한 이틀 봄비가 오더니,
마을과 산과 들에 있는 온갓 나무들의
푸스르슴한 싹에 초록물이 흠뻑 들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오기에
마당에 나가 섰습니다.
연초록빛 옷을 입기 시작한 집앞 마당의 은사시 나무가
바람결에 스스스 소리를 내며 나를 반깁니다.
겨우내 우중충한 색으로, 비비 꼬인 가지들을 허공에 늘어뜨리고 있어
겨울 스산함을 더하던 감나무도 '나도 이제 생명활동을 활발히 하여
계절에 어울리는 나무가 될거야'란 예감을 안깁니다.
멀리 시선을 두니, 항상 푸른 자태로 서있던 사방의 봉우리들이
한발짝 내게 가까이 다가선 느낌입니다.
그것도 하얀 안개를 뿜어내면서......
비만 오면 이곳의 산들은 하얗디 하얀 안개를 발산합니다.
그런 산들에 둘러싸인 채 있다보면 여기가 현실세계가 아니란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죠.
비오는 날이 많아 그런 풍경쯤은 이제 우리의 한 일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볼 때마다, 어떤 경이로움을 안깁니다.
결코 지루해지지 않는 나무와 산들이 조금씩 봄과 여름이란 계절에 힘입어
우리 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 오고있습니다.

(은사시 나무)

(싹오른 감나무)
시골로 이사오며
우리 부부는 이런 저런 나무 심을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안겨주는 유실수를 많이 심자고 누차 얘기하며 군침까지 흘리곤 했거든요.
나무에서 빨간 사과를 따서 먹는 즐거움.
시원한 배. 키작은 덩굴나무에서 따내는 포도송이, 등등등.
물론 꽃만 보기 위해 심은 배롱나무, 수수꽃다리, 철쭉, 벚나무, 목련등등.
지금은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심은 나무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심었건만, 나무 심은 티가 별로 안나는 겁니다.
대부분 1~2년생 묘목을 심었기 때문인데, 묘목이 눈에 잘 안 띄고,
잘못 건드려 부러지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눈에 잘 띄도록 색깔있는 리본을 묘목에 매어두기까지 했거든요.
집을 짓기 전 나무 심는 것에 대해 마을 어른들이 한마디씩 하더군요.
"그 나무는 이름이 뭐당가? 지천으로 나무이구만 고런 요상한 나무는 심어 뭐할라꼬."
"산에 대니다 보면, 두릅나무 보이걸랑 그놈이나 심어. 봄에 나물이나 먹게."
"참, 그라고, 저 멀쑥 키만 큰 나무는 베어버리라고."
"예? 저 은사시 나무 말이세요? 우린 저 나무 너무 멋있는데..."
"멋은 무슨 멋이랑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무라. 괜히 잎세기 떨어지면 지저분만하고..."
"그래도 저 큰 나무를 잘라내면, 저런 나무를 어느 세월에 키워요?......."
"하나도 쓸잘때기 없는 나무이구마..."
우리집 앞 언덕에 키크고 올곧게 자라는 은사시 나무가 예닐곱 그루 있습니다.
봄에 연한 잎들이 약한 바람에도 춤을 추듯 일제히 살랑대 스스스 소리가 들립니다.
여름에는 잎들이 제법 커져 사사사 소리에 비가 오는가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집 앞쪽에 이런 나무가 있어 집이 아늑해서 좋다고 여기고 있는데,
우리가 작년 집을 짓기 시작하자, 마을 어른들이 이 나무들을 베어버리라고
다들 올라와서 한마디씩 하더라구요.
그래도 우리는 안 베고 꿋꿋이 버텼습니다.
지금 이 은사시 나무에도 싹이 올랐습니다.
봄이 되니, 이 은사시 나무의 싹들이 은근히 기다려졌습니다.
우리가 시골로 오기 전, 이 나무들이 받았을 박해(?)를 생각하니,
어서어서 싹을 내, 멋진 자태로 한 계절을 풍미하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심은 묘목들에 비하면 이 은사시 나무는 값어치가 몇십배는 됩니다.
물론 우리 시각에서이지요. 가느다란 묘목들을 보면 이 나무들이 언제 커서 저 은사시 나무가 만들어 내는 그늘이나 멋진 자태를 낼 수 있을까?
그럴려면 인간이 잘 돌봐주어야 하는데, 안탑깝게도 심은 묘목들 중 여러 그루가 죽었습니다. 물길이 있는 곳에 심었거나, 개들과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모르고 밟았거나,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죽은 묘목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또 맛난 과일들을 먹기 위해서는 거름과 약치는 일은 필수라 합니다.
사과 농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맛난 사과를 거둘 수 있는가를
물어 본 적이 여러번 있는데, 그 때마다 우리가 들은 대답은
"먹을 생각일랑 아예 하도 마소." 였습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약쳐야 하고, 거름져 날라 뿌려 주어야하는 일을 겨우 다섯 그릇 키우자고 그 짓을 하겠냐는 겁니다.
농원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 주렁주렁 사과가 열린 것을 보더니
남편왈 "야! 우리 사과 나무 네그루(한그루는 죽었습니다.)에서 저만큼 열리면, 사과 일년내내 실컷 먹겠다."
그 희망이 갈수록 작아져 요즘은 '꽃이나 보며 즐거워하자'로 바뀌었습니다.
시골에서의 생활 내지는 전원에서의 삶에서 나무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무 밑이나 밭두렁 논두렁을 지나다보면 항상 쓰레기를 보게됩니다. 특히나, 페트병, 깡통이나 심지어 농약병등도 예서제서 굴러다닙니다.
누가 이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까? 놀러온 행락객들이 그런짓을 하는건 아닐까?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마을 안쪽의 산과 논밭 특히나 큰나무 밑에 묻혀있는 쓰레기는
마을 사람들이 버린것이요,
길가에 쓰레기는 농로 포장하던 사람들이 버린것이요,
마을 앞 강가에 있는 쓰레기는 행락객이 버린 것이란 결론이 내려집니다.
마을 할머니와 얘기하다보니, 그 페트병과 깡통, 비닐등이 보기에도 흉하고, 환경오염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TV를 가장 많이 보시고 계신 연령층인데, TV 뉴스에서 그리 떠들어대던 환경오염 문제를 못 들었던가?
계절이 여름으로 향하면서 푸른 초록들이 이런 쓰레기를 점차 덮어버려,
덜 눈에 띄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쓰립니다.
눈을 들면 저 아름다운 산과 들, 나무, 강줄기가 빗줄기에
더욱 선명히 푸른 빛을 내고있지만....
가끔 저는 마당에 서서 바라보이는 풍경에서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떠올립니다. 빗물에 젖어 은빛 반사를 보낼 때는 더욱 그의 시가 그립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