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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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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들.....


BY 쟈스민 2001-08-27

토요일 저녁 무렵 오랜만에 대구에 사는 동생내외가 왔습니다.

시댁에 제사차 왔다가 언니네에 들른 거라 했습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탓에 여동생들은 언니네집이
늘 친정같이 느껴져서인지 마냥 편안한 대화로 하루 저녁을
함께 했지요.

젖살이 올라 뽀얀 아기를 데리고 온 동생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마른 것 처럼 느껴지더군요.

뼈만 앙상한 몸으로 그래도 모유를 먹이겠다는 고집스러움으로
아기에게 여태껏 모유를 먹이는 동생이 안스러워서

난 친정엄마들이 딸에게 하듯 얼큰한 육개장을 끓이고, 맛깔스런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구워서 저녁상을 차려 주니 동생은 모처럼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살림하는 엄마들은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을 대하면 왜 그리 행복하다고들 하는지......

그리 여유로운 생활은 아니지만 동생 내외는 늘 다정하게 보여서
난 그것으로 편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단단해 뵈는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조카도
너무 사랑스러웠지요.

노처녀로 시집갈 생각도 하지 않던 동생이 어느새 이만큼 자란
아기의 엄마가 되어있음에 세월이 빠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바라 보고 있으면.....
아이에게 엄마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엄마로 인하여 하루가
다르게 커 가고 있는 꿈나무를 보는 듯하여 마음이 뿌듯하지요.

아주 소중한 보물을 가슴에 안아 들듯 늘 사랑으로 넘쳐나는
눈으로 아이를 안아 주고.... 보듬어 주고.....

그런 자잘한 모든 행동 하나 하나에 사랑이 묻어 있음을 나는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저러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는
후회스러움이 일고 있었지요.

어쩌면 부질 없는 나의 욕심을 채우려 했기에 난 그냥 말만 엄마이고
제대로 엄마노릇도 못하며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는지.....

그런 생각으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혼자서 안으로 안으로 삭이고 있는 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행복이란 게
아주 먼 데 있는 게 아니란 걸

동생의 사는 모습을 바라다 보며
나는 다시금 느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남편의 월급을 쪼개어 적금을 붓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마른 몸에서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려는 마음이 있으니
아기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모유가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는 약해도, 결코 어머니는 약하지 않다는 말이 아마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요?

그러면서도 분유값이 들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동생이
마냥 행복한 엄마로 내 눈에 비쳐졌습니다.

동생은 내게 말했습니다.

언니는 참 대단하다고.....
직장다니면서 어쩜 이리도 집이 깔끔하냐고....
음식도 늘 새로 맛깔스럽게 장만해서 가족들들 위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소박한 삶에 묻어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행여 내가 집안일과 바깥일을 다 잘하지 못하는 때도 있으리란
생각을 동생에게 다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동생이 일상에서 꿈꾸는 작은 꿈들이 그저 모두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난 또 누구나 조금씩은 다른 모양새로
삶을 살아가겠거니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내 집이 없어도 이렇듯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부부에게서 또 다른 모습의 행복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정말 잘 살았노라고 먼 훗날 우리들은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요?

그렇다고 뭐 거창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전 다만 스스로에게 좀더 솔직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살면 되지 싶습니다.

살다가 마음이 아주 많이 힘들어지는 시간에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 것도 괜찮지 싶어요.

나 보다 나아 보이는 이를 만나면 그에게서 힘을 얻어 보고
나 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이를 만나는 시간엔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리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침 저녁으로 한결 서늘해진 바람을 느끼며
어느새 창문을 닫고 밤을 나야 하는 시간들이

우리 앞으로 차츰 다가서고 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많이 힘들지마는
아직은 그 짐들을 내려놓을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어떻게든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가 봅니다.

커피가 맛있어 지는 계절입니다.

그리운 이들 불러 모아
우리모두 향기로운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음
하는 바램이 혼자만의 바램이 아니란 걸

가을 바람은 아마 알고 있지 싶습니다.

우연히 길가다 동생에게 어울릴것 같아 사 놓았던
자잘한 꽃무늬가 프린트 된 원피스가

어제서야 주인을 만났습니다.

너무도 좋아라 하는 그 아이의 고운 웃음에서

난 또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걸 보면

살면서 좀더 많은 걸 나로 부터
덜어내며 그리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을에는

특히 나를 비워두고 물빛 하늘위로 고운 그림을 그리듯
그리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걸 채우기 위해 분주히 살아온 나를
한번쯤은 되돌아 보는 시간이 필요한건지요....

아이와 함께 자잘한 꽃잎들을 붙이며 하나 하나
만들어지는 기쁨을 누려봅니다.

자잘하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은 .....

아름다운 기억들이 우리에겐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