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강력범죄와 아동 성범죄자들의 처벌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9

봄날은 간다.


BY dansaem 2003-04-13

오후에 조용히 책좀 볼라니
이놈들이 달려들어서 사람을 그냥 안 두네.
티격태격하다가 막내가 잠들고
산책삼아 쑥도 뜯을 겸
뒷산을 올라갔다.
말이 산이지 동산만하다.
양지바른 곳이라 무덤은 또 얼마나 많든지...

꼬불꼬불 오솔길 옆으로,
나즈막한 무덤옆으로,
할미꽃이며 뱀딸기꽃이며
이름모를 풀꽃들이 활짝~
담이는 연신 꽃을 보며 감탄하고...
"역시 산속에는 꽃들이 많다니까~"
이 소리를 몇번이나 하는지...
그러자 큰놈이
"그러니까 우리가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 중에
그런 거 있잖아. 봄은 꽃나라~ ♪♬"

여름은 별나라,
가을은 숲나라,
겨울은 눈나라.
라네.
말되네.

울집 뒤로 올라가서
한참을 돌아 동네 꼭대기로 내려왔다.
도중에 쑥은 한줌 정도 뜯었는데
쑥이 산에야 별로 있나.
밭둑이나 논둑같은데 많지.

오면서 진달래 따서
꽃술가지고 싸움하는 거도 가르쳐주고
한창 재미나는데
막내 우는 소리가 산아래까지 들리네.
그래서 부랴부랴 내려왔지.
오래 자라고 일부러 전화선까지 빼놓고
휴대폰을 다 꺼놓고 갔구만은
반시간밖에 안자고 말야.

결국 쑥은 집 옆 길가에 소복이 자란 곳에서 뜯었다.
가져간 비닐봉지로 거의 가득 뜯어서
일일이 다듬고 내일 쑥떡 해먹을 꿈에 부푸는데
어머님한테 보이니까
그걸로 쑥 냄새나 나겠냐고... ㅠ.ㅠ

밭에서 뽑아온 여린 배추랑 열무랑 쪽파,
아직 전부다 야들야들한 것들을
한다라이 다듬어 씻어서
저녁에 양푼에다 대고 비벼먹었다.
심심하게 겉절이 하고 된장 끓이고
고추장 한숟갈 푹 떠 넣고
참기름 넉넉히 치고 비벼서는
신랑이랑 둘이 머리 쳐박고 먹었다.ㅎㅎ

오늘 하루 바쁘고 또 아이들이랑 재미도 있었는데
어째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쓸쓸한 듯...

아!
봄날은 간다.

참,
얼마전에 영화 '봄날은 간다'를 봤다.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헤어지자는 은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돌아섰지만
늦은 밤, 은수의 아파트를 서성이는 상우의 모습,
은수의 새 차를 긁어대는 유치한 상우의 모습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흔한 사랑 영화인 것 같은데도
보고 난 후의 느낌이 뭔가 달랐다.
배우들의 감정이 내게로 이입된 듯한 느낌이랄까.
한참동안 난 그들의 감정속에 있는 듯 했다.
안타깝고 가슴이 저미는 듯.

ㅎㅎ
아줌마가 별 소릴 다 한다하겠지?
신랑이랑 그렇게 가슴 설레는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제 다신 그런 사랑 해볼 기회도, 또 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남의 얘기에 같이 가슴 좀 설레보면 안 되나.
봄인데...

에고~
증말로 봄날이 다 가고 있네.
2003년의 봄도,
내 인생의 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