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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포옹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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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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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이야기(4)


BY 도요새 2001-08-23

민애아닌 다른친구와 극장엘 갔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안녕하세요?"
누군가 내려오다가 말을 걸었습니다.
올려다보니 성수가
그 역시 한 친구와
웃고 있었습니다.
"네,안녕하세요?"
그리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성수도 저도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 한 채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서로 말한 것도
웃은 것도 첨입니다.
"언제 오셨어요?"
"네,지금요."
옆에선 누구냐고 각자의 친구가
각자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럼,안녕히...."
"네,안녕히...."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는데
우린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1년 쯤 지나
성수가 유학갔단 얘길 들었습니다.
가끔
딱지 뗀 상처처럼
성수가 생각났습니다만
그 뿐
성수는 제게있어
황순원의 소나기에 다름없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
민애도 결혼을 했습니다.
전엔 아니었지만
이젠 같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애증이 엇갈리는 나날이었습니다.
참는 제 성격에 반 해
민애는 퍼붓는 성격이었지요.
번번히 당하고
번번히 억울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남편과 애들 때문에는
한 번도 울 일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친구가 아니라 웬숩니다.
그러면서도
무슨일이 있으면
민애를 찾았고
민애는 저보다 더했습니다.
아파도 남편보다 저를 찾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참 많이 참아야 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것도
사랑해서라니까
할 말도 없었구요.
웬수라니까요.
그런 세월이 20년이 흘렀습니다.

어느주일날
민애가
흥분된 얼굴로 제게 속삭였습니다.
"성수왔다."
"뭐?"
"한국지사로 발령 받았대."
"...."
"교회때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반갑겠네."
맘이요?
예전처럼 쿵쾅거리지 않두만요.

민애는 그때부터 변해갔습니다.
교회때의 친구들 모임을 만들었고
성수가 쉬는날인 토요일엔
민애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성수의 이름을 들어야 했습니다.
화장도 짙어졌습니다.

또 그런 세월이 3년이나 흘러갔습니다.
세월 참 잘 가지요?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왔는데
민애가 제게
성수를 만나기로 했으니 좀 데려다 달라는 거였습니다.
아마 그 날도 토요일이었을걸요.
너무 늦지 않았느냐고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한 번만 부탁하자구요.
1시간 거리나 되는 곳이었는데
차를 돌려 그 곳으로 갔습니다.
성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정말 그 뿐입니다.
옛친구를 보는 기분으로요.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호기심외엔
다른 관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는데
민애는 저보고
그만 가보라고 했습니다.
성수가 오기 전에
등 떠밀려 돌아왔습니다.
치사빤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이 후회했습니다.
민애를 데려다 주는게 아닌데...하고요.
성수를 보려는 마음에 그런게 아닌가하는 자책도
물론 했지요.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없었다곤 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변했나하는 호기심외엔
전혀,다른맘은 없었다고
정말 그렇게 장담할 수 있다니까요.
제가 그렇게 깨끗한 맘이 아니었다면
이 더운데
미쳤다고
여러분께
이 얘기를 시작했겠습니까?

성수얘기를 듣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때론 지겹기도 했습니다.
점점 멋부리는 민애도
보기에 심히 역겨웠습니다.
제가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니냐고 한 마디하면
민애는 삐져서
몇 일 동안은
전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수는
가족과 헤어져
혼자서 한국에 살고 있다는데.....
여러분도 걱정되시지 않습니까?

어느
화창한 봄날의 토요일이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지금으로부터 5년전 5월 몇일 이었습니다.
숫자가 자주나와
계산하시느라 헷갈리시죠?
그 거 별로 중요치 않으니 신경쓰지 마십시요.
민애와 전
한 예식장에 있었지요.
피로연까지 끝나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민애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예상한대로 성수였습니다.
어디 교외에 친구와 있는데
올 수 있으면 오란다고요.
우리도 다른 친구와 셋이 있었는데
그 다른 친구는 성수를 만난 적이 있다 했습니다.
민애와 같이 나갔었다는군요.
친한 저에게도
국가기밀 인냥 보여주지 않더니요.
별꼴입니다.
멀리 있다니까
어쩔 수 없이
민애는
제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가
"너도 갈래?"
하고 물었습니다.
너도 갈래가 뭡니까.
차는 제차밖에 없었는데요.
택시도 타기 어려운 교외라지
울며 겨자먹기란 거
제가 모릅니까?
제 눈칠 본 건
혹시 제가 아직도
성수에게
관심이 있을까봐 망서리는 거란 거
저 그 거 잘 압니다.
어쨌든
그래서
성수를 봤습니다.
11월달의 어느 날
극장에서 마주친 후
26년만의 해후입니다.
그 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친구의 애인인 게 확실한
성수를
정말로 아무런 감정 없이
그렇게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