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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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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쉽게 변질되는게 아니야


BY 잡초 2003-04-10

" 바람한번 쐬고오지 않을래? "
감실감실 눈까풀이 내려앉으려 하는데 탁구공처럼 통통 튀는 경쾌한 목소리로
남편은 말을한다.
아주잠깐 난 망서림을 갖는다.
" 어디로? "
생경스러운듯 묻는내게 남편은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 뭐 동학사쯤 가보지 "
미소까지 지어보인다.
아! 맞아 바로 저 눈빛. 저 눈빛은 예전에 나를 사랑했던 그 눈빛인데...

쑤시고 자고 일어나 머리도 감지않고 고냥이 세수만을 했던터라
머리모양새가 미친년 속곳마냥 마구 헝크러져있다.
" 지금? "
" 응. 그러지뭐. "
' 나 머리 엉망인데... ?
" 그냥 가. "

치카치카 양치질에 모자하나 푸~욱 눌러쓰고 털레거리며 남편의 뒤를 따라 나간다.
우리차로 가는줄 알았더니 남편은 딸과 나의 자전거를 열심히 점검하고 있다.
바퀴에 바람은 제대로 빵빵한지 브레이크는 제구실을 틈실히 할수있는지
안장의 높낮이와 먼지는 없는지...

" 자전거 타고가게? "
" 운동삼아 자전거 한번 타보자. "
'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
" 글쎄... 왕복 십육키로쯤 될꺼야 아마 "

십육키로 거리의 감이 내게 제대로 전달은 되지 않아도
자동차로 휭~하니 다녀오는것보단 운동도 되고 경치또한 한가로히 구경도 할수 있을거 같아
흔쾌히 남편에게 미소로서 대답해 본다.

내닫으며 마주받는 바람이 아직은 시려웁다.
귓볼이 얼얼하고 파고드는 바람에 가슴팍을 여미어도
자꾸만 내 입에선 아고추어!가 풍선의 바람처럼 새어나온다.

" 나 믿고 나만따라와 "
횡단보도와 공사중으로 인도도 없이 차도만 남은 거리도
남편은 날쌘돌이마냥 쌩~휭~ 휭~쌩 잘도 달리고
무서움에 엉거주춤하는 나를 쉴새없이 뒤돌아보며 수신호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알려준다.
남편의 저 모습은...
일년여를 뺀 나머지 십구년의 바로 그모습이었다.
날 어린아이 다루듯... 보석을 다루듯...그렇게 애지중지 귀히 여기던...
저 모습이 위선이던 가식이던...
난 그냥 순간을 보기로 했다.
보여지는 그 모습 그대로에서 지금은 날 걱정하고 날 보호해 주고 있는 그 모습...

때론...
죽이고 싶도록 미워도 했고
내 마음속으로 남편의 가슴에 비수도 수없이 꽃아보았고
내 머리속으로 남편의 머리에 수없이 총구도 들이대 보았지만...

지금은 돌아와 내 앞에 있는사람.

딸아이에게 핸드폰을 열어 보여주며 입력난을 설명하던 사람.

" 봐! 여기봐라. 아빠 핸드폰에는 딱 세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만이 있단다.
일번은 여우와 토끼 우리집이고.. 이번은 여우, 네 엄마고 삼번은 토끼, 바로 너란다.
네가 한번 봐봐 그외엔 아무도 없지? 이제 아빠에겐 아무도 없어.
오로지 있다는게 네 엄마와 너밖에는...아빠믿지? "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이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뒷좌석에 있는 나를 백미러로
바라보며 한껏 눈치를 보던사람...

함께 한이불을 덮고 잠을자다가도 남편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
맵고도 차게 그 손길 뿌리치면... 머쓱해서는 돌아눕던 사람...

이제그만..
남편을 받아줘야지.
방얻어 보따리 싸갖고 의기양양해서 나갈때만 해도 팔십키로의 오동통 너구리가.
어깨펴고 큰대자로자는바람에 요떼기에서 밀려 날 새우잠자게 했던 그 배포가
지금은 칠십키로. 오히여 역으로 되서는 새우잠을 잔다.

앞서가던 남편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질때쯤
우연히 바라본 남편의 정수리가 훵~하다.
저이의 머리가 언제부터 저리 빠져있었을까?
울컥~ 가슴이 싸아함을 느껴본다.
" 당신 신경좀 쓰슈. 속알머리 없는사람 다 되었네 "
퉁명스레 남편을 앞지르며 한마디 내 뱉는다.

동학사 내부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사먹고
엿장수 각설이패의 흥취도 구경하고
공을던져 인형을 맞추는 게임도 해보고
벗꽃과 나무와 바람과 설핏설핏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과
지나는 온갖종류의 강아지들에게까지도 난 방싯 미소를 한다.

배부르게 먹고 즐거이 눈요기도 하고 서둘러 우린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농수산시장에 들러 열무도 사고 알타리도 사고
아구와 미더덕을 사고...
남편과 내 자전거에 나누어 싣고는 우린다시 힘껏 페달을 밟는다.

살아있는 날들을 위해서
살아가야될 날들을 위해서
그리고...남아있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사랑은 쉬이 변질되는게 아니라는걸 난 확신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