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거리를 사러 나선 길에 또 내 어머니를 만났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푸성귀를 파는 초로의 시골 아낙네.
내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키웠다.
그래서 푸성귀를 팔러 나온 시골 아낙의 모습을 볼 때마다 돌아 가신 내 어머니를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한다.
시오리 장터 길을 시내버스 차비가 아까워 무거운 푸성귀 광우리 머리에 이고 오뉴 월 땡볕에 걸어다닌 어머니,
푸성귀 광우리 장텃 가에 내려 놓고 오는 이 가는 이 눈치 보며 사 주기만을 기다릴 뿐 수줍어서 사라고 권하지도 못 하신 어머니,
장터에 앉아 아스팔트 열기를 들이 쉬고 내 쉬며 땀을 비 오듯 흘리고도 일 원하던 냉차 한 그릇 돈 아까워 못 사 마신 어머니,
삼베 치마 이리 저리 기워 입어도 자신의 초라함 조차 모르시던 어머니,
손톱 밑이 다 닳아 피가 나고 아파도 교복 입고 공부하는 자식 모습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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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머니가 암으로 곧 돌아 가실거라며 누워 계실 때 이 딸은 어머니 ?아 보는 길에 드는 차비를 셈했다.
몸져 누운 시간이 길어지자 일 주일에 한 변 찾아 가던 길을 이 주일로 늦췄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는 남편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속 앓이 하며 차비만 셈했다.
남편이 아니라도 자식들과 내 살 궁리하느라고 차비를 셈했다.
이제 어머니가 돌아 가신 지 십 년도 더 지났건만 길 가에 앉은 시골 아낙의 모습을 보며 당신의 마지막 길에 차비를 셈하던 죄책감에 눈물이 난다.
명절이라 시집 가족이 모일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시뉘 다섯, 시동생 둘, 집 안의 맏며느리였던 어머니.
고모 다섯 중에 하나만 빼고는 모두 잠시나마 친정 살이를 하였다. 철 없는 작은 아버지 하나는 살림을 세 번이나 새로 내 주어야했다.
성미 급한 작은 어머니 하나는 큰 집 자식들도 매를 들어 때리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그런 속에 다툼 한 번 일으키지 않았던 어머니.
작은 집 식구나 고모네 식구들로 조용할 날이 없음을 불평하던 내게 그 들이 찾아 옴을 감사하라던 어머니.
양식거리 걱정하는 작은 집에 아버지 몰래 양식을 퍼 나르던 어머니.
작은 집 식구나 고모네 식구가 오면 버선 발로 뛰어 나가 맞으시던 어머니.
오 남매의 맏이에게 막내 딸을 시집 보내면서 맏이가 좋다시던 어머니.
죽으면 썩어질 몸뚱이는 아끼는 게 아니라던 어머니.
어머니,
돌아 가시면서 그러셨다지요?
막내 사위 손을 꼭 잡고 당신의 고집쟁이 떼쟁이 막내딸하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언젠가 시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머니 당신을 칭찬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 붙이시더라구요.
며느리를 얻을 때는 친정 어머니를 꼭 보고 얻어야 한다고.
당신 덕분에 결혼 생활 이십 년이 되도록 시집 식구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듣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살아 계셔도 당신 ?아보는 길에 들 차비를 나는 또 셈할 것입니다. 당신이 베푼만큼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에게도.
하지만 노력할께요.
내가 당신의 딸임을 잊지 않도록.
그래도 가끔씩 제가 잊거든 당신이 날 만나주세요.
오늘처럼 푸성귀를 팔러 나온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