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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친구


BY 나비 2003-03-29


그 애는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는 서울의 중심이라는 남산을 바로 옆구리에다 끼고
운동장위로는 케이블카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발 아래로는 서울시내가 한눈에 쫘악 깔리게 보였다.

그시절 우리집은 쌍문동이고 그애집는 수유리였다.
여차저차 가는 방향이 같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원하지않아도 등하교길을자동으로 함께하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애는 펜팔로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날마다 그 얘기를 들어줘야하는 만만치않은 고통~~
당한사람은 아시리라...
언제나 새로운 표정으로 대답도 신선하게 해 줘야,
신나서 한얘기 또하고 ...또하고
남들은 알지못하는 이중고 삼중고의괴로움에 시달리느라 내 머리털은 허옇게 변해가고 있는중이었다.

아~~~
너무 착하다못해서 바보스럽기까지했다.

그러기를 어언 몇년..
그애는 연애를 논바닥에 있는 찰거머리 처럼 해댔다.

하지만 뒷걸음질 치던 소가 쥐잡는다고 ,
연애를 목숨처럼하던 그애는 그때까지도 지지부진하게 싸웠다 헤어졌다를 주말연속극 횟수올라가듯이 하고 있을때
나는 어떤 제비 뒷다리 같은 놈한테 걸려서 휘리릭~ 시집을 가버렸다.

그 제비 뒷다리 같은놈은 엣날 농촌총각들이 유행하던 수법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했으니..


그 수법이란 장가들기위해 서울에서 직장잡아서 일하다가 결혼하면 홀랑
시골로 줄행랑을 놓는 야비하고도 얍삽한 그 방식을 순진무구한 이 몸한테 써먹은것이다.

생전 듣도보도못한 충청도 시골로 이사를 갔다.
가보니 우선 걷는 폼새부터가 달랐다.
우짜든둥 서울에서는 급해서 뛰기보다는 남들이 뛰니 나도 뛸때가 많았고 평소에도 무지하게 빠른 걸음걸이를 자랑하곤했는데..
이 충청도 양반인지 머슴인지들은 세상 급한게 암것두 없었다.


교회를 갔더니 찬송가 한구절 부르려니 긴~숨을 몇번씩
들이쉬고도 모자랄판이었다.
과거에 젊은애들만 득시글대는 교회를 다녔었던지라
찬송가 한곡조도 빠른템포, 재즈 피아노 ,드럼을 쳐대던 교회에서 ...
충청도 찬송가를 부르려니 이몸의 고충을 어찌 필설로 그 어려움을
토로할수 있으리오~


생활은 문화의 차이와 정신적 충격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으니..
생활을 포기안하고 충청도인의 기상을 높이살려 잘 적응하고 살다가
잠시 볼일이 있어서 서울로 나들이 했을때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그때꺼정 연애질하던 인사외 결혼도 못하고 주거니 받거니 쌈박질만 일삼던 그애를 만나기로 했다.

그애의 직장은 인사동 한귀퉁이에 있었디.
자세히 언급하자면 아마 낙원극장 근처가 아니었던가 싶다.
물론 직장인이므로 점심시간을 ??上底?이몸이 인사동으로 향한것까진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그애 를 만나 반가움에 한차례 폴짝거리며 먼지를 날리곤
어디 한적한곳에가서 얘기라도 할까 하며 거리를 걷고있는데..
모든 인간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려 인사동거리를 떡시루처럼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었다.

한발자국가니.. 실장님..시골에서 올라온 제 친구예요..ㅎㅎ
두 발자국가니..부장님 ..시골에서 올라온 제 친구예요..ㅎㅎ
시골이란 말에 갑자기 더욱더 시골스러워져 서을 거리 한복판에서 점점 얼굴이 붉어져가고 있었다.
한 두어번은참아줄수도 있었다.
시골에서 안 사는게 아니었으니까...
세 번째 부장도 실장도 아닌놈한테까지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라고 소개하는데

아니 야~가 미?나..
돌았나...?
그런생각과함께 가슴속에는 차돌멩이같이 딱딱한것이 뭉쳐가고있었다.

뚱땡이 더러 뚱뚱하다 그러면 화나는게 인지상정이고
시골 아줌마한테 시골을 강조하자 이유없는 열등감에
괜시리 화가 ??구쳐오르는게....


내마음은, 화창하고 따뜻한 봄언저리에서
황사 날리고, 옷 다 뜯어지고, 머리 헝클어진 ,헐크 같은 마음으로 바뀐것은 말할나위도 없었다.

간만에 만나서 즐거운 수다나 떨어볼까 하던 마음은 얼음이 켜켜이
쌓여만가고.
애비성도 에미성도 없는, 물에 술탄듯 술에 물 탄듯...
대화는 건성건성 끊어져가고...
서울아가씨 시골 아지매는 그리 헤어졌다.


지금 그 잘난 서울 아가씨 우째 사냐하면
죽자고 싸우던 웬순지 박순지 한테 느지감치 시집가서
이제사 코 찔찔 흘리는 어린것들하고 짓쌈해가며 저 좋아하는 서울에서 살고있다.

이 시골 아지매 아직도 충청도 일대를 못벋어나서 남들 뛰어다닐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한량없이 걸어다니고
역시나 교회가서는 남들보다도 반박자 더 질질 끌며 느려터진 찬송가를 하나님께 성실히 헌납하며 살고있다.


지금이야 모든일에 느긋함이 배어져서 누가 시골산다고 소개하면
저 시골에서 올라왔시유~~~~~하겠구만
그 때는 젊은 혈기에 시골이라는 말에 웬지 자존심에 싱채기나서 열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서울에서 살으라고하면 고개 훼훼~내어져으며 손사래를 치게 생겼다
지금은 시골이 내집 안방같고,안방에서 받아먹는 내 밥상처럼 편안하니
내 마음은 이제 안성맞춤 시골 아지매임이 틀림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