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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슬프다(5)-외할머니


BY 에스더 2003-03-24

현대는 노인문제가 앞으로 쟁점 사항이 된다고 한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봉사단에서 독거노인에게 봉사활동을 가 보면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늙은다는 그 자체가 벌써 죄가 된다는 것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득을 해서 쬐금은 알고 있다,
외할머니가 오셨다, 그 때가 언제든가, - 이제 보면 우리 에스더 언제 보누, 이제 마지막이데이-
그렇게 마지막 마지막 이라고 하더니 올해 외할머니 연세가 89살이다.
엄마에게 부쩍 잦게 들은 외숙모와 외할머니와의 원만하지 못 한 불협화음들이 내 고막을 얇게 찢었다.
추운 한 겨울날, 외할머니방만 쏙 빼어 놓고 보일러를 튼다든가, 전화도 없애버린다더라, 죽으면 한 줌도 안 되게 확 해치워 버린다더라는 등 더라, 더라는 무성한 소문...
그 내막이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오래 오래 장수하고 사는 것이 자식들에게 짐짝처럼 되고 말았으니, 남자보다 더욱 오래 살 수 밖에 없는 여자의 슬픔이 마침내 비애가 되고 말았구나...
-외할머니 오셨데이.-
그런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이 황량해지고 스산해지는지 모르겠다,

직장생활 핑계로 야간대학 핑계로 차일피일 4일을 미루었다.
그래도 주말이니까 가봐야겠지...
늘 집에 없는 엄마가 모처럼 집에 있는 토요일 오후, 일요일이라는 핑계로 안 가기에도 그렇고...
그런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외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는 것일까, 꼬꾸러져서 완전히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잘 걸으시지도 못 하시는 외할머니인데 내가 한 걸음에 달려가서 주름진 얼굴을 보듬어 드려야 되는 것인데 난 뭐가 두려운지 내 자신을 알지 못 하겠다,,,
주일학교 반사의 임무를 마치고 11시 예배를 마치고 멸치 다신 국물을 내어서 계란을 얇게 부치고 국수를 해 먹고 동생 내외가 외할머니 모처럼 오셨다고 맛있는 해물탕을 사 준다며 점심 먹으러 오라는 말을 듣고도 가지 않고 3시쯤 되어서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두 아들녀석에게는 증조외할머니니까 만나면 인사 잘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만난 외할머니...
세탁기에서 탈수하고 막 건져낸 쪼글쪼글한 옷 같은 외할머니 얼굴, 팔에도 어디에도 살다운 살은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 늙으면 저렇게까지 늙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들 정도로 꼬부랑 할머니...
예전의 동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꼬부랑...
하는 노래를 부를때는 그래도 즐거운 마음이었는데 지금 꼬부랑 할머니가 내 눈 앞에 있는데 백발은 영광의 백발일텐데 모진 인고의 세월을 견딘 상장일텐데 내 눈에 이슬이 고임은 늙는다는 것은 눈물과 가까워 진다는 의미일까???
-아유, 우리 에스더라, 아이구 이게 얼마만이고, 내가 아직도 안 죽었데이, 빨리 죽어야 너거들이 편할텐데...-
밥이고 뭐고 드시라고 사정사정해도 조금씩 조금씩 잘 안 드실려고 하는 모습,
-엄마, 내 이제 밥 먹고 살 형편은 된 데이, 제발 좀 안 먹는다는 소리는 하지 마래이-
엄마는 외할머니가 잘 안 드실려고 손사래를 치실때마다 인상을 찌푸리시며 너희 외할머니 또 저러신다는 듯 나한테 눈짓을 하신다.
-외할매, 진짜루 외숙모가 그래 구박하나, 방에 불도 안 넣어 준다며 -
-아유, 야가 뭔 소리하노, 너희 외숙모가 얼마나 잘 해 주는데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난데이, 니는 또 아들한테 뭔 소리해서 야들이 이런 소리 하누-
하시면서 엄마를 나무라신다,
89살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는 총기는 넘치셔서 우리가 하는 말을 일일히 응대를 하시고 말씀도 예전처럼 정말 많이 하셨다.
치매기 하나없이 사시는 것만도 복이시다.
우리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신다는 외할머니, 나중에 천국가서도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겠다는 외할머니, 눈가에 촉농이 많이 끼어서 예전에 아끼던 병들어서 죽은 강아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연약한 외할머니....
요즘은 화장실에 너무 자주가신다며 불평을 하시면서 화장실로 가시다가 오줌을 사신 외할머니, 아무도 반겨 주지 않고 이제 가실때도 마땅하지 않는 외할머니 딸네를 1달, 2달씩 번갈아 가시고 눈치껏 사셔야 하는 외할머니...
그래 노인문제가 정말 앞으로 심각하겠구나, 예전의 고래장이 왜 나왔겠는가, 먹고 사는 것이 없어서 그랬다고나 합리화나 하지, 요즘은 먹고 살것도 많건만 늙으신 꼬부랑 할머니는 어딜 가도 반겨 주지를 않네. 오래 사는 것도 죄인 세상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