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임신 7개월째,
나름대로 행복한 결혼에 성공하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여자다.
오늘도 저녁식사이후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라는 말과 함께 입을 맞추는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늘 공개적이고 함께 한 남편과 나의 e-mail체크 시간.
남편에게 최근에 매일같이 오는 e-mail한통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모지방에 사는 여대생. 자신의 남자친구가 남편의 11년 후배가 된다며 남편의 대학모임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게 된 모양이었다.
메일의 내용은 자신과 남자 친구의 관계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고,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우리에게 남편을 "오빠!~"라고 나를 "언니"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아이를 "조카"라고 불러주는 애교(?)까지 지니고 있는 그 여학생.
남편은 친절하게 매일오는 그녀의 메일에 답장을 해주었고, 이 여학생은 매일같이 그답장을 열어보는 재미(?)와 낯선 사람에 대한 동경(?)인지 기타 등등의 감정으로 매일 메일을 보내면서 남편의 답장을 무척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은 한시적인 것이고, 그 여학생 또한 자신의 남자친구와 남편을 연관시켜 그저 인생 선배로 따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잦아지는 메일과 내용이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그렇게 친밀감을 가질 수 있을까? 과연 남편은 무슨 마음으로 이여학생에게 답장을 매일 해주는 걸까? 그여핵생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낯선아저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속속히 보여주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화가 나게 되었다.
물론 남편은 결백(?)했다. 그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그저 평범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매일 그녀의 답장에 정성껏 답하는 태도가 그 여학생을 감동시켰으리라.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직속 후배면 모를까,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10년 이하 후배의 여자친구를 어디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그것도 인연이라는 끈으로 묶어 두려고 할까?" 속상한 마음에 한바탕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 그리고 "그여자 아이도 좀 지나친것 아니야. 자신의 남자친구에게나 잘할 것이지.."라는 말과 함께.
남편은 내가 일종의 질투를 한다고 생각했나부다. 잠시 웃더니 그동안 주고 받은 메일의 내용을 자세히 보여준다고 하며 자신의 무고함를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자세한 내용까지 확인해야하며 남편을 의심하는 여자로 인식되어져야할까?" 은근히 자존심도 상하면서 그냥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설레일수 있고, 거짓으로 일관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한없이 상대에게 진실할 수 도 있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탓일까? 모르는 이에게 친근하고 은밀한 호칭과 속삼임을 받는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운건. 그리고 그것이 한층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건.
타국에 멀리 떨어져 살면서, 다양한 정보검색과 고국의 소식, 만나고 싶은 부모님과 친구들을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신속하게 만날수 있다는 사실들만으로도 이 편리한 세상에 살게된것을 감사해하기도 바쁜데.
만남의 소중함,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
익명의 만남의 경계선은 어디까지 일까?
남편과의 고요한 행복의 시간들을 유일하게 깬 그 사건을 게기로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다...아직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