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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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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이야기 보따리 네엣...


BY 아름다운 그녀 2003-03-20

어느 날.....
내가 이혼녀라는 사실..
내 딸이 ....남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손가정의 딸이라는 사실..

그것이 참 거슬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호적이 조금 ...달라졌을 뿐
나는 여전히 건강한 사고와 따스한 모성...원만한 인간관계를
예전과 다름없이 유지하고 있는 ...변함없는 나였으므로..

주민등록 등본에 아빠 이름이 없어진것 말고
내딸도 여전히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열달 꽉 채워 씩씩하게 쑥~ 세상밖으로 나온..
다른집 자식 못지않게 귀하디 귀한 그런 딸이었으므로...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모녀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내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들까지도..

'쯧쯧..세상에..어쩜좋니....웬만하면 그냥 살지..
애 불쌍해서 어쩐다니....?'

'그래..남들도 다 그렇게 살어..뭐 별다른거 있는줄 아니..?'

병원에 가서 의료보험 카드를 내밀면
접수처 직원은 나를 한번 더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본다.

'이혼한 사람 처음 보셨나보네요....'


'아....아니예요...'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누르며
나는 점 점 더 고개를 쳐들어야 했다.

나는...나를 바라보며..나를 거울로 삼아 성장하는
성인 여성의 본보기는 내가 가장 가까운...
내 딸..내 귀한 고슴도치가 있었으므로
나는 어느자리에서건..기죽을수 없었다..

아니..기가 죽을 권리도 없다고...그렇게 세뇌를 했다.

하지만..나는 자꾸 속으로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슈퍼에 가면 유모차를 미는 다정한 젊은 부부와
놀이공원에 가면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어대는
자상한 아빠들..
사랑스런 아내의 허리나 어깨를 팔로 두르고
따스한 눈빛을 건네는 사랑하는 사람들...

고개드는것이 고통스러워 일부러 오버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솜사탕으로 장난을 치고...
그러다 다른 아이의 아빠를 부러운듯이 쳐다보는 내 딸을 발견하고
그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일찍 돌아오곤 했던...시간들 속에서
어느날 문득..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나같은 사람이 있지않을까..?
나처럼..이혼하고..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아빠가
나처럼 기죽어서 외출도 못하고
목마름에 허덕이는 아이를 바라보며 울지않을까..?
있을꺼야...
왜없어? 그날 법원에 앉았던 수많은 사람들..
그 들도 이렇게 살아숨쉬고 있을텐데...'


차 가질래 ?
컴퓨터 가질래?

헤어지면서 재산(?) 나누기 하다가 나는 자동차보다 컴퓨터를
택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있으니 컴퓨터도 가르쳐야겠고
자동차는 특별히 내게 필요없을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연결하고...몇군데를 뒤져서 이혼과 관련된 모임을
찾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그런 모임은 없었다.

나는 지방이든 어디든..딸하나 키우는 내 또래 동성친구 하나만
있다면...너무나 고맙게..좋은 벗 되어줄텐데...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자그마한..모임을 나는 직접 만들었다..

설마..자기가 이혼했다고 쑥 ~! 얼굴 내밀며 가입할 사람이
있을라고?
아니야..있을꺼야..있을꺼야..

어설픈 인터넷 실력으로 ,무거운 짐 벗어던지고 훨훨 날자는
의미로 까페 이름을 '종이 비행기'로 지었다.

오전에 까페 개설을 하고, 집안일을 대충하고 컴퓨터를 켰을때
놀랍게도 회원이 가입되어 있었다.

그 때의 가슴 두근거리던 마음은 ..아..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이틀동안 5명이 가입을 했지만...아쉽게도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더구나 아이를 직접 키우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고
대부분 아이가 없거나..전처가 키우는 경우였다.

그들은 나를 '운영자'라고 불렀고,
나는 아이있는 여자만 원한다는 말을 차마 할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까페 어느 규칙에도
아이있는 여자만 가입하라고 명시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다 나같은줄만..
이혼한 ..애 키우는...여자들만..세상에 존재하리라 생각했던
바보였으므로...

30 명
50 명
100 명
200 명...

회원수는 감당할수 없을만큼 늘어갔다.
나는 특별히 뭔가를 해야한다는 목적도 없고
그저 나같은 처지의 친구하나 갖고싶은 마음에 시작했는데
어느 새 나는 이혼한 사람들의 선구자(?)가 되어있었다.

그저 남들보다 한발자욱 먼저 세상에 고개내민 죄(?)로
그들은 나에게 내 그릇 이상의 것들을 원하고 있었다.

법률적인 상담
심리상담
재판과정과 협의이혼시의 주의점
양육권, 양육비 청구시 주의점이나 참고사항

그들은 쉴새없이 질문했고
밤낮없이 전화를 했다.

심지어..새벽 4시에 울면서 전화하기도 했다.


남편이 때려요..
남편이 바람났어요..
아내가 이혼하재요..난 하기 싫은데..
언제 얼굴 한번 봅시다...등등

준회원으로 가입한 예비(?)이혼자들도 하소연할곳이없어
가슴속의 응어리를 내뱉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 말한마디에 그들은 울고 웃으며
새로운 세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이혼자들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그것이 나의 작은 바램일뿐이었다..

그 사이 몇번의 오프라인 모임을 거쳐 우리 모임은 점점
틀을 갖춰가기 시작했고,
어린이 날 행사와 크리스마스 행사, 놀이공원 모임등
아이들을 위한 행사들이 몇번 이어지고
우리는 다른 부부들이 하는 일상의 일들을
서로서로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어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자금난에 허덕이던 우리 까페의 모사이트가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우리가 세들어 살던 집주인이 망해서 ...그 집이 없어진 것이다.

갑자기 우리는 우왕좌왕 갈곳을 잃었다.
이미 전화번호나 서로의 기본정보는 갖고 있었지만
지방회원들이나 얼굴 내밀기를 꺼려하는 소심한 회원들은
그저 사이트에 글 올리고, 남의 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를 받던 상황이었으므로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휘청이고 있었다.

어느날 초기가입 회원중 컴퓨터를 잘 하시는 한 남자분께서
제의를 해 오셨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아예 이혼사이트를 만듭시다..
셋방살이 보단 낫지않겠어요? 까짓거 만들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