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를 집을 못구하고,갈 데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던
남편에게 나는 그 동안 싸 두었던 짐을 내어밀며
집을 비워줄것을 요구했다.
나는 점점...피가...차가워지고 있음을...
그리고 삶에 대한...나에 대한...아이에 대한
본능같은 생존의 몸부림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었다..
짐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집이 휑~ 하니 허전하고 나는 뚜렷한 목적도 세우지 못한채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밤이고,낮이고,
아이 밥도,내 밥도 챙겨먹을수 없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까이 지내던 골목의 두 젊은 엄마가 찾아와서
내 꼴을 보며 울기 시작했다.
손가락 뒀다 뭐하니..엎어지면 코닿을 덴데..전화 한통 하지.
자긴 그렇다 치고..애는 먹여야지...
똑딱거리며 찌게를 끓이고,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각자 애 둘 딸린 엄마들이라...살림솜씨는 말할것도 없으니
집은 순식간에 사람 사는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정신 차려야지..
살아야지..
하지만 자꾸만 자꾸만 까부라지는 나..
깊숙히..바닥 아래로...늪으로 빠져드는 나...
바람소리만 들려도 후다닥 가슴이 내려앉으며 문을 열어본다.
'아빠왔어?'
'아~~니..** 아~! 아빤 이제 안와.....'
'응..알어..근데..난 보러 온댔잖아..'
'응...근데 이 시간엔 안오구..주말에 데리러 온댔지...'
미운사람...
죽이고 싶도록 미운사람..
하지만...가엾은 사람...
열병을 앓으며...낮밤 모르고 앓던 어느날....
삐리리...전화벨이 울린다..
'나야..** 엄마..'
아이 아빠였다...
'.....어....왜..?'
어제 신문 봤어?
아니..
* * 신문 ...꺼 봐..없음 사서 라도 봐.
거기 임대아파트 신청자격에 * * 엄마 될것 같아서..
지금 사는 집에 언제까지 살순 없잖아..한번 알아봐.
내일까지가 마감이야.. 집이라도 온전한데 살아야...
내가 마음이 편하지..애가있잖아....잘 살아야지..
응..(고양이 쥐생각하네...)
40 도 가까이 열이나고 계절은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픈 몸으로 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뛰려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임대아파트라도 된다면....일단 집걱정은 당분간 안해도
되겠지...
동사무소를 쫓아다니며 서류를 준비하고,
처음에 넣으려던 장소에 줄을 섰는데....어마어마 하게 길었다.
아픈와중에도 그 긴줄에 넣으면 당첨될 확률이 적을것 같아서
듣도보도 못한 동네의 짧은 줄 쪽으로 옮겼다..
'저기...실례지만..여기..어떤 자격으로 신청하시는거예요?'
나보다 약간 어려뵈는 젊은 엄마다..
'네...모자가정요...남편 없거든요..'
'어머..반가워요 언니..저둔데....우리신랑...
우리 애 태어나고 한달있다...죽었거든요...'
'네.....'
'언니..우리 ..꼭 ?瑛?좋겠네요...'
'그래요...그럼 좋겠네요..'
'근데..이 아파트 있는 동네는 어디래요?'
'저도 사실은 몰라요..동네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렇군요..'
그렇게 젊은 과부들은 보도듣도못한 낯선동네로 들어가기 위한
어설픈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듬해 봄....둘이 살면 딱 좋을 아담한 새로 지은
임대아파트에 8층과 17 층에 나란히 당첨이 되었다..
구립 어린이집도 공짜..
아파트도 싼 월세..
아..이혼하니 좋은것도 있구나...
아니지..그 보다 더 좋은게 ..정말 좋은게 하나 있다.
나는 이혼한 뒤로..잠을 자고 있었다..
불명증...과 다면증 을 반복해오던 나는
몇일은 못자서 약을 먹었고, 또 한동안은 밤낮을 내리 잠만자는
다면증 과 우울증에 시달려왔는데
그러고보니..나는 서서히 정상적으로 잠을 자기 시작하고 있었다.
더구나...늦은밤이 되어도 기다릴사람 없으니 오죽 좋은가..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들어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며 새벽까지 선잠 자는 일을
더이상 하지 않아도..
우리는 낯선 집에서 현관문 꼭꼭 걸어잠그며
푹...자도 되었다...
17층 은 정말 조용했고
우리는 싱글 침대에서 꼭 끌어안고
그해 겨울을 나고 있었다....
근무시간이 길어 어쩔까 망설이던 3개월 여간의 의류매장 판매직은
이사를 하고 두달만에 그만두었다.
모든 일은 아이중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5살...(그래봤자 만 4살...)이 된 아이를
정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방치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서류들을 준비하고..
창업자금 대출을 받기위해...
그리고 임대아파트 보증금....소형차 한대가 될락말락한 돈이지만
담보대출을 받았다..
드디어...나도...사장님이 되었따...
집앞에 ...월세가 어지간한 남자월급만 한 비싼곳이지만
아이를 가까이 둘수있으니....다행이다..위로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은 젊은 여자..
키도 작고..마른 여자..
톡 건드리면 푹..하고 쓰러질것 같은 여자..
그러나..
소중한 내 아이의 엄마자리에 있으려면...
나는 독해야 했다..
8층 ** 엄마도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했다며
작은 분식집을 내고싶어했다..
3평 남짓한 무허가 분식집에서 우리는 밤새 페인트 칠을 하고
쥐약을 놓고, 물청소를 하고..
그렇게...씩씩하게 살기로..얼굴 마주칠때마다...약속을 했다.
기죽지 말자..
기죽지 말자..
후에 우리집 다녀간 사람들이 말을 했다.
전철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아파튼데..너네 동까지는 절대로
걸어서는 못다니겠더라..
무슨 아파트 단지가 그렇게 크니...?
없는 사람들 살라고 만든 거면 좀 바깥쪽에 세우지..
젤 돈없는 사람들 동을 젤 끝에 세워놓으면...영세민,장애자들
차도없이 어떻게 다니니..?
그랬다.
밤 11시가 넘어..잠은 아이를 들쳐없고 20분씩 언덕길을
도시락 주머니..아이 놀이방 가방...등과 함께 올라가려면
아무리 추워도 진땀이 났다..
하지만 어쩌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아이안고 차 세우면
손흔들고 지나가는 것을..
없는게 죄지..
없는게 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