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일기 시작하던 그 날.
사랑하기에 손색없던 기후속에서 사랑받기에 부족함없던 그이를 만났던 그 날.
그는 준수한 외모와 아름다운 인간성으로 내 앞에 섰다.
아~ 그시절 내 어느곳에 그런 열정이 잠재워 있었을까.
나는 그에 사랑받기를 꿈꾸며, 그에 여자되기를 꿈꾸며 조금씩 다가갔고 그 기다림의 짜릿함으로 한동안을 행복해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 얘기를 친구로 부터 전해들었다.
찢어질듯이란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너무도 가난한 집안에, 형은 반편이로 둘째인 그이가 큰아들노릇을 해야했으며, 그덕분에 그는 지독한 온달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
난 그동안 그리도 그에 곁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래왔으나 순간 내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여자가 되어 그에 꿈을 채워 줄 수 있을 것인가.
나에게 그런 인내심과 희생정신이 있는가.
난 나 자신에게 백기를 들었고, 사소한 무엇인가를 핑계삼아 그에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그에 자존심은 나를 오래 붙잡지 않았다.
난 사랑을 잃은 아쉬움마져 서둘러 지워버렸다.
빨리 도망치고 싶은 비겁한 마음이 앞섰다.
......
그리고 얼마후 내가 먼저 결혼을 했고, 그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끝이다.
순수, 열정, 그 영악했던 나에 모습 모두 끝이다.
그저 이제 난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결혼생활과 두 아이키우기에 모든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다.
......
그런데 이제와 그립다.
미치도록 그립다.
그가 그리운것도, 그와에 사랑이 그리운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바로 나!
그를 사랑했던 그 시절에 내 모습들이 참말 그리워 자꾸 불러보아도 아무리 뒤적여봐도 아무곳에도 없다.
새벽까지 그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동 트자마자 우체통으로 달리던 모습..
서울까지 족히 너댓시간, 주말이면 대여섯시간도 넘게 걸리던 그 먼길을 그에 도시락까지 싸서 오르내리던 모습..
그에 생일 그 몰래 깜짝 쇼를 준비하며 행복해하던 날들...
그런내가 그립다.
나에게 이제 그런 나는 없다.
그래서 예전 그날 처럼 찬바람 부는 오늘 내가 더욱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