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난 참 자주 싸운다.
엄마가 날 염려해서 건 전화통화를 하다가,
오랜만에 간 친정에서 현관서 맞닥뜨리는 순간,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엄마의 목소리에서 쟁여진 세월의 두께를 확인하는 순간,
못된 내 성정은 엄마에게 시비를 걸고 만다.
어릴 때 엄마의 젖을 못먹고 자란 탓인지,
아님 낮잠 자다 깨면 언제나 사라지고 없던
엄마에의 그리움이 중년이 된 오늘까지 남아서인지,
정말 엄마와 성격이 안 맞아서인지,
마음과는 달리 나의 애정은 미움으로 표출이 된다.
이틀 전 여동생은 싸이판으로 여행을 갔다.
올 일월 초에 결혼식을 올린 동생은 전국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로 신혼여행을 못갔다.
자상하신 동생의 시아버님은 당신의 새며느리 여름휴가에 맞춰
늦은 신혼여행을 가게끔 신경을 써주셨다.
시아버님의 며느리 사랑을 모르고 살아온 나는
그것이 아주 부럽게만 보였다.
엄마의 사랑도 독차지 하더니 결혼해서도 아주 복이 많구나...
어린아이처럼 질투도 나고 샘도 나고...
십 여년 전 나는 아주 초라한 결혼식을 올렸다.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빈한한 집의 맏며느리로
시집가는 나에게 엄마는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다.
결혼생활에 필요한 냄비 하나, 이불, 웨딩 드레스, 패물...
이 모든 것을 가장 싼값으로 할 수 있는 곳곳을 찾아
나혼자 발로 뛰어다니면서 겨우 구색만 맞춘 결혼식을 올렸다.
그 흔한 결혼반지 하나 시집에서 받지 못했다.
남들은 외국으로 비행기 타고 축복 속에 다녀오는
신혼여행도 난 가지 못했다.
가난한 연인이던 시절 남편과 커다란 무덤 앞의 잔디에 앉아
미래를 그려보곤 하던 경주로 일박, 하룻밤만 자고 온 것이
나의 신혼여행이었다.
결혼식 전날 신혼여행 이야기를 꺼낸 나에게
엄마는 돈이 없다 하시며 이십만원을 주셨었다.
그것이 신혼여행비였다......
동생은 사박 오일 싸이판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날 우리집에 오겠단다.
썬 글라스에 수영복, 커플티...
재부랑 돌아다니며 다 장만했다며 행복한 음성으로 전화를 했었다.
웃사람답게, 언니답게, 먼저 결혼한 인생의 선배답게
기분좋게 한마디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좁은 소견에 초라했던 나의 결혼식이 떠올라
잘 다녀 오녀라...
재미있게 지내다 오너라...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곧이어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난 울음섞인 목소리로 엄마는 항상 동생만 걱정하고
위해준다고 퍼붇고 말았다.
나의 음력 생일날 미역국이라도 끓여먹었나...궁금해서
전화를 한 칠순의 엄마는 성정 못된 둘째딸에게 봉변을 당했다.
엄마에게 그렇게 하고도 너의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믿어라...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그날따라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묵묵한 전화기를 바라보며
나는 울고 말았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꾸 떠오르는 과거 생각...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에게 드는 자격지심,
그럴 때마다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싫어지는 시집,
나를 성냥팔이 소녀의 처지로 만든 남편에 대한 미움...
세월이 지나도 씻어버릴 수가 없다.
지긋지긋한 이 기억...
언제쯤이면 꾸질스런 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동생은 우리집에 오겠노라 했었다.
지금 심정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무얼 하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