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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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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 한 권


BY 동해바다 2003-03-07

   

연일 내리는 비...
삼라만상을 적시고도 모자라 내마음까지 흠뻑 적신다.

빗방울들이 노닥거리면서 우산을 든 행인들의 바지자락까지 튀어 오른다.
 
이틀째 썰렁한 가게 안이다.

무료함을 메꾸기 위해 집에서 가져 온 아이들의 쓰다남은 공책을 
뜯어 모아 정성껏 내 공책을 만든다...

공책(空冊)...
노트도, 필기장도 아닌 공책...
정감어린 두 글짜...

요즘은 번쩍거리는 겉표지와 알멩이들이 빈공간을 채워줄 주인들을 기다리며
값비싼 가격으로 문구점에 나와 있다..

갱지...
난 거칠고 투박한 그런 종이가 좋다.
옛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좋은 느낌을 그 종이냄새에서 받는다.

며칠 전에 원고지를 사러 문구점에 들렀다.
예전에 쓰던 누런 원고지는 아무리 찾아도 없어 할수없이 깨끗하고 
하얀 원고지를 사온 적이 있다.

하지만 쓰지 않고 내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다.
다행히 아는 분께서 갱지로 인쇄해둔 원고지 몇 뭉치가 있다면서
그냥 쓰라고 몇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촌스럽지만 웬지 친근감이 가는 종이..
그 종이 위에서라면 얼마든지 줄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모되어 가는 볼펜 하나 손에 쥐고 끄적거리다 보면
볼펜 끝에서 나오는 흔적들이 흐리지 않아 참 좋다...

매끄럽고 진한 글씨가 미꾸라지 헤엄치듯 잘 나간다..

손님없는 가게 안에서....
바지런히 손놀림하고 있는 난..
제법 두툼한 공책 하나를 만든다.

모아모아 끝을 호치케스로 찍고 보이지 않게 도화지처럼 두꺼운 종이로 표지까지 만드니...
아이들의 남은 공책으로 만든 내 공책 하나....

거기에 나를 쏟아 붓는다...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