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내리는 비... 삼라만상을 적시고도 모자라 내마음까지 흠뻑 적신다. 빗방울들이 노닥거리면서 우산을 든 행인들의 바지자락까지 튀어 오른다. 이틀째 썰렁한 가게 안이다. 무료함을 메꾸기 위해 집에서 가져 온 아이들의 쓰다남은 공책을 뜯어 모아 정성껏 내 공책을 만든다... 공책(空冊)... 노트도, 필기장도 아닌 공책... 정감어린 두 글짜... 요즘은 번쩍거리는 겉표지와 알멩이들이 빈공간을 채워줄 주인들을 기다리며 값비싼 가격으로 문구점에 나와 있다.. 갱지... 난 거칠고 투박한 그런 종이가 좋다. 옛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좋은 느낌을 그 종이냄새에서 받는다. 며칠 전에 원고지를 사러 문구점에 들렀다. 예전에 쓰던 누런 원고지는 아무리 찾아도 없어 할수없이 깨끗하고 하얀 원고지를 사온 적이 있다. 하지만 쓰지 않고 내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다. 다행히 아는 분께서 갱지로 인쇄해둔 원고지 몇 뭉치가 있다면서 그냥 쓰라고 몇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촌스럽지만 웬지 친근감이 가는 종이.. 그 종이 위에서라면 얼마든지 줄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모되어 가는 볼펜 하나 손에 쥐고 끄적거리다 보면 볼펜 끝에서 나오는 흔적들이 흐리지 않아 참 좋다... 매끄럽고 진한 글씨가 미꾸라지 헤엄치듯 잘 나간다.. 손님없는 가게 안에서.... 바지런히 손놀림하고 있는 난.. 제법 두툼한 공책 하나를 만든다. 모아모아 끝을 호치케스로 찍고 보이지 않게 도화지처럼 두꺼운 종이로 표지까지 만드니... 아이들의 남은 공책으로 만든 내 공책 하나.... 거기에 나를 쏟아 붓는다...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