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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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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가 갈치꼬리 끊어 먹는다지만


BY 남풍 2003-03-04


어머니가 내게 유일하게 강조한 게 있다면,
정직도, 성실도, 믿음도, 사랑도 아닌,
"갈치가 갈치 꼬리 끊어 먹는다."는 말이었다.

사실, 갈치를 손질하다 보면, 내장 가득 갈치가 들어 있기도 한다.
또, 갈치를 낚을 때는 주로 꽁치를 썰어서 미끼로 쓰지만,
갈치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갈치들이 갈치를 뜯어 먹는 것은,
갈치 눈에 멸치와 같은 작은 고기정도로 보이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만약, 내게 인육을 주면 그게 내 종족의 고기라는 걸 알 수 있을까

설령, 갈치가 제 배고픔에 동족을 잡아 먹는 습성을 가졌다하더라도
그건, 종족보존의 대명제 아래 진행되는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

작은 농촌 마을에 살면서, 어머니는 품앗이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은 언젠가 자신을 해할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그 흔한 계모임도 친구도 심지어, 한 마을에 살았던 친동생도
경계했다.
친구나 주변 사람을 믿지 말라는 생철학은
어머니를 외로운 사람으로 살게했다.

어머니의 지나친 사람에 대한 경계심에 대한 반발인지,
그로인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 나는 어머니의 딸답지 않게
사람을 많이 믿는 편이라, 주변에 사람도 많다.

간혹 어머니의 말이 가슴에서 울컥 올라 오는 날도 있지만,
서른네 해 내 삶에서, 내 살점을 뜯어 주고 싶은 사람이 더러
있을지언정, 나를 뜯어 먹을 것 같은 친구나 나를 크게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마음이라는 게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내가 정말 좋이하는 사람과 적당히 맞춰 주는 사람과
싫어 하는 사람,
내가 그걸 느끼는 그 순간 상대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믿는다.

나의 울타리를 낮출수록, 주변에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지는 것 같다.
그럴수록 다른 이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 삶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일년내내 겨울 바람만 불고, 꽃도 피지 않던 거인의 집 나무에,아이들이 놀러와 매달이기 시작하자 꽃이 피는 것과 같이,
꽁꽁 닫아둔 마음의 문을 열면
내 안의 것들이 쓸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향기가 불어 들어온다.

어머니의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이 없었던 건,
스스로 다른이의 믿음이 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살점을 뜯길까 홀로 바위 뒤에 숨어 사는 갈치가 아닌,
뜯길 때 뜯겨도 넓게 헤엄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