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어느 가을
시댁엘 가니 거실 한 켠에
울퉁불퉁 못 생긴 늙은 호박 하나가 뎅그마니 놓여 있다.
정말 그렇게 못 생긴 호박은 처음 보는 거라
혼자서 킬킬거리며 실컨 웃었다.
'아니~,넌 뭐땜에 그렇게 혼자서 웃니?'
시어머니께서 궁금하신지 물으셨다.
'어머니.
어머니 초상화를 왜 여기에다 두셨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신 시어머니는
거실벽을 두리번거리신다.
'여기 말이에요, 요~기'
그래도 아직 자신의 초상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시는 시어머니.
'어디 말이냐? 저기 벽에 걸린 내 사진?'
'아~뇨, 여기요, 여기. 저 늙은 호박~
어머니 초상화 아닌가요?
한 쪽에 얌전히 모셔놓았잖아요.'
난 박장대소를 하느라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너무나 어이가 없으신지 눈을 흘기시는 시어머니,
'아~니, 이것이 시어미를 놀려?
내가 어째서 저 호박이냐?'
'주름진 누런 얼굴 모양이 딱이구만 뭘 그래요 ㅋㅋㅋㅋ'
그날 밤 시어머니는 가족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마디 하셨다.
'네 큰 형수가 저 늙은 호박이 내 초상화라고 놀렸단다.'
모두들 어쩜 그렇게 기 막힌 생각을 했냐고 배를 쥐었다.
온식구가 모이자니 거실이 비좁을 듯 싶어
대장(?)으로써 또 한마디 했다.
'자아~
눈 큰 사람들은 거실에서 먹고,
와단(와이셔츠 단추구멍)들은 저 쪽 골방으로 모이세요.
저~기 고여사님-우리 시어머님은 고씨이심-,
골방으로 앞장 서세요-'
이십여명의 가족들 가운데 쌍꺼풀 아닌 가족은
시어머닐 비롯하여 서너명 뿐.
서러워서 수술해야겠다며
울 시엄니 또 눈 흘기셨다.
며느리네 안사돈 돌아가셨다고
전화 하실 적마다 눈물로 나를 위로해 주시는 우리 시어머니.
신혼초엔 시댁에서 전혀 도와주지도 않고
학생 신랑 뒷바라지하며
너무나 힘 들게 살아
미운 짓(?)만 보이시더니 세월이 약인가.
이젠 미움이 변하여 잔잔한 정으로 변하여 가는 건가...
나는 늘 할 말은 하고 사는 큰며느리.
신랑 흉도 시어머니께 모두 털어버린다.
깐깐하시기로 소문난 시아버지.
초등학교 선생님 경력 40여년에 초등학생 속알머리 되어버렸다고
핀잔 주시는 시어머니.
동서들은 시아버지 화 나시면
-모일 때마다 거의 트집을 잡으시고
이건 짜고 이건 싱겁고, 성의가 없고 등등 화 내셨음-
모두 무서워 주방으로 피신하며
'혀~엉니~임'하며 날 부른다.
처음엔 나도 경직되어버렸었는데
이젠 나도 나이 드니 여우가 되어가는가.
'아버니~임.
워째 화나셨어요?
며느리들이 다 무섭다고 도망 가 버리네...
아버님만 외로우실텐데...
어디 어깨라도 주물러 드려요?
아들아 뭐하냐, 할아버지 어깨 주물러 드리지 않고...'
'시'자는 가까운 타인이라 여기면 덜 서운한 법이라던가'
수 년 후면 나도 늙고 시어머니가 되겠지.
이젠 늙은 호박 가리키며 '어머니의 초상화'라 못할 거 같다.
시어머닌 이젠 진짜 할머니가 되셨기에...
속으로 서루워하실지도 모르기에...
이 다음 내 며느리는 늙은 호박 보면 뭐라 할 건지
차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