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첫사랑의 추억으로 살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에
날개를 접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열일곱 어린 나이에
수줍게 찾아왔던 첫사랑의 끝자락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의 행복하게 살고있는 부부 이야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대책없이 심술이났다. 토요일 저녁을 뒤죽박죽으로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일요일 신새벽부터 일어나
쇼파 위치 바꾸고 대청소를 했다. 이른 아침해서 잠자는
식구들 깨워 강제로 아침을 먹고 밖을 내다 보니
촉촉히 겨울비가 온다.
"비와서 산에도 못가고 밀린 일이나 해야겠다."
남편은 서류 뭉치를 들고 컴앞에 앉을 기세다.
그대로 두면 하루 진 종일 자판만 두들기면서 머리 아프게
할탠데 나는 아직 어제 심술이 풀리지 않아 바람을 쐬고 싶다.
"드라이브 가요. 운전도 내가 하고 밥도 내가 살께."
애교와 협박 공갈을 총동원하여 기여코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어디 갈거냐는 질문에는 대답도 없이 무작정
차를 몰아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전철역을 지나 직진을 하니
늘상 가는 드라이브 코스가 아닌것에 놀란 남편이
"날도 궂은데 도대체 어딜 가는거야. 알고나 가자."
들은척 만척 구리 고속도로 진입 직전에 직진하여 새길에
들어서서 갔다. 공사중인 도로를 달리다 빠져 도농 삼거리를 거쳐
덕소를 거쳐 시원한 6번 국도를 달렸다. 팔당댐, 정약용 생가 표지판을 보고 구길로 빠져 안개낀 강변을 달려 정약용생가 주차장에
차를 멈췄다.
남편은 기가 막혀 이여자가 도대체 얼마나 돌아 다녔길래
모르는 샛길이 없고 안가본 곳이 없냐고 차를 처분 하겠다느니,
열쇠를 뺏겠다는니 궁시렁궁시렁 중얼중얼 화가나 어쩔줄을 모른다.
못들은척 전시실, 기념관을 안내했다. 전시실 입구에서 정약용선생의
저서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위대한 인물의 일생 속에 빠져 버린다.
생가도 둘러보고 묘지도 올라가보고 얼굴이 풀어진다.
"잘 왔지요?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어"
기여코 잘 왔다는 대답을 듣고 다시 차를 돌려 팔당 댐 위를 거넜다.
점심을 사겠다고 강변을 달리니 다시 궁시렁궁시렁 이렇게
많은 음식점을 두고 멀리 갈 것 있냐는거다. 밥이 그게 그거지
비싼 기름 써 가며 멀리 가느냐고 '여자들은...' 까지 하면서 또
불평이다.
밥이 목적이 아니고 꼬인 심사를 푸는게 목적인 나는 신나게 무조건 갔다.
양수리 강이 내려다 보이는 우아한 곳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생각인데
"저기 손만두, 손칼국수 저거 먹자."
밀가루 음식을 하루만 못 먹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사람 눈에
손만두가 뜨였으니 그냥 지나칠리 없지.
다시 차를 돌려 지나친 만두집으로
사골 국물에 손으로 빚은 만두를 끓여내는 솜씨는 먹을만 했다.
아들 몫의 찐만두까지 포장해서 돌아 왔다. 덕택에 점심값은 엄청
굳었다. 우아한 한정식이 만두국으로 바꼈으니
보고, 먹고 다 했다는 남편은 옆에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졸고있고 뿌옇던 하늘은 어느새 맑음으로 변해있다.
파란 하늘, 편안한 강물은 끝없이 가서 그 속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한다.
세월은 언제 저 혼자 가버렸는지 나이 50을 넘었고 시간의 흔적이
온 몸에 그림을 그려 색깔을 입히는데 나는 아직 노엽고, 언짢고,
서러운 아픔이 시시때때 밀려오니 언제나 철들려나
언짢을 것도 없는 일에 이러는 내게 화가나서 더 마음이 어지럽다.
어린 시절을 함께 공유한 친구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웃으며 툴툴 털어버릴 수 있을탠데.
"남과 함께 즐거워 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 할 줄 알고"
한용운의 싯귀는 먼- 세계의 남의 일인가.
바람에 실려온 아련한 추억이 잠시 현실을 잊게해 주었다.
5시간의 나들이가 다 비워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