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훅 하고 끼치는 온기에 안경이 금새 뽀애집니다.
한겨울인데도, 한낮의 하우스 안은 조금만 움직여도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 정도로 무덥습니다.
하얀 눈이라도 내려 앉은듯
조그맣고 앙증맞은 딸기꽃이 여기저기 피어있고
싱싱한 연둣빛 잎파리들이 이슬을 머금고 있습니다.
사이 사이 붉은 연지빛 딸기들이
수줍게 고갤 떨구고 있는모습은
그야말로 색채의 절묘한 조화입니다,
연초록,진초록 바탕에 하얀 점점이 꽃들, 그리고 빨간 점점의 열매들.
이 풍경을 음미하고 있을 여유도 없이
옆구리에 바구니 하나 차고서
딸기 거두기에 나섭니다.
작은 딸아이 주먹 꼭 쥔듯한
크기의 딸기가 여기저기 달려있습니다.
내가 자주 바르는 립스틱의 선홍색을 닮은
붉은 물이 잔뜩 오른 딸기들이
여간 먹음직스럽지 않습니다.
흙묻은 손을 쓱쓱 바지에 닦아내고
꼭지끝까지 붉어 있는 딸기 하나를 톡 따냅니다.
입에 베어문 순간,비릿한 풋내와
입안 가득 고이는 달콤함에
순간 아찔할 지경입니다.
아이들은 벌써 입주위가 벌개지도록 따먹고 있습니다.
이 한겨울에, 이 비싼 딸기를 이리
아이들에게 맘껏 먹인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솔직히 한톨 한톨 소중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기도 아깝습니다.
지난 7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치우고 지나갑니다.
물설고 낯설은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아이 아빠 원망도 ,푸념도 많이 하면서
많게는 십여명의 사람들 밥을 해대었던 일,
박한 시골 인심에 황당해 하던 일들,
믿었던 친척들에게 발등찍혔던 일들,등등이 떠올려집니다.
그동안 흘렸던 땀과 눈물이
여기 이 빨간 딸기로 결실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런 딸기를 거두어서 엊그제 처음으로
서울 가락동 시장에 내었습니다.
허리를 다쳐서 고생이 많던 남편은
허리 아픈 고통도 잠시 ?蔓봤?연신 싱글벙글입니다.
4킬로 들이 세박스를 간신히 만들어 놓고
나머지 딸기들,크기가 작다거나
달팽이가 파먹어서 조그맣고 동그란 구멍을 낸것들을 모아서
설탕가득 붓고 냄비에 앉혔습니다.
한시간여를 졸여냈더니
윤기 자르르한 딸기잼이 만들어졌습니다.
구은 빵위에 잼을 얹어서
우리 식구 참 행복한 한끼식사를 했습니다.
혹시 딸기를 사드시다가 동그랗고 조그만 구멍이 있는 걸
발견하셔도 안심하고 드세요.
달팽이가 파먹은 자리고, 달팽이가 살고 있는 딸기밭은
그나마 청정한 곳이니까요.
저희 딸기밭에는 청개구리가 돌아다닙니다.
달팽이들이 딸기를 갉아먹어 골치지만
달팽이 퇴치법을 알 수 없어
그냥 맘 좋게 봐주고 있습니다.
가끔 땅속에서 지렁이도 슬금슬금 기어나옵니다.
이렇듯 여럿 생명들이 공생하는 저희 딸기밭은
아이들도 그 자리에서 딸기를 따먹어도 되는
사람도 같이 사는 건강한 딸기밭입니다.
같은 지역의 딸기더라도 재배하는 농민의 역량에 따라
약을 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어느 분 딸기는 크기도 굉장히 크고 당도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먹고나면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우리 딸기는 크기는 그리 크지 않으나 적당히 달고
약간의 시큼한 맛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딸기입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시장에 가면
무조건 깨끗하고 크기가 크고 모양 좋은
과실이 제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토종 농산물들은
키작은 우리네 모습을 닮아 오종종하고 야무진 것들입니다.
이제 시장에 가시면,또는 마트에 가시면
너무 크고 모양 좋은 것만 찾으시지 마시고
좀 벌레가 먹었어도 작고 단단한 우리 토종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래야 건강한 작물을 농민들도 자꾸자꾸 생산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 먹거리도 자꾸자꾸 건강해집니다.
지금쯤 어느 식탁에 올라
어느 분의 입맛을 돋우고 있을지 모르는
우리 딸기를 생각하니 참 흐뭇합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보람이 이런건가 봅니다.
한 바구니 가득 찬 딸기를 이고서
오늘은 우유넣고 맛있는 쉐이크나 만들어볼까 궁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