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외할머니는 색색이 무늬도 선명한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설빔으로 해 주셨다. 동네에서 바느질 솜씨 잘하는 여염집 아낙한테 특별히 부탁하여 꽃수를 넣은 버선까지 일습으로... 발에 볼이 넓어 버선 신기가 힘들면 습자기를 발뒷꿈치에 대고 힘껏 잡아다니다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였는데... 금박물린 빨간 댕기까지 매고 첫번째 가는집이 외할머니의 수양 아드님 댁이 였는데 그집에 가면 친척집처럼 푸근했다. 어느해인가는 친구 정애네 집에가서 가래떡에 조청 찍어 먹다가 노란 저고리에 흘려 쩔쩔매던 기억도 난다. 논가에다 집을 지었다고 할머님께서 논펄집이라고 부르시던 집에 세배를 가면 벽장에서 꺼내 주신 손수 만든 강정이 유별나게 맛있었다. 음전하신 아주머니였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그집 뒤란엔 꽃들이 만발하였고 늦여름엔 봉숭아 꽃이 소담하게 피어서 우리의 맘을 들뜨게 했던... 안주인의 알뜰함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설날 세뱃돈을 받으면 이상야릇한거 파는 가게에서 풍선뽑기랑 이런 저런거 매달아 놓고 뽑기하는 것들 중에서 얇은 스펀지에다 분홍물을 들인 머리에 꽂는 리봉이 그리 내마음을 끌었다. 아래부분이 실핀으로 되어있어 머리에 꽂으면 리봉핀이 되는... 남자아이들은 딱총놀이를 한답시고 화약냄새 진동하게 딱총을 쏘아댔는데 난 그 화약 냄새가 좋았다. 이젠 누가 설빔을 장만해 주는이 없고 가슴 설레게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는 중년이 되었다. 받는 것 보단 주어야 할 것이 많은 나이.. 그래도 가끔은 어린시절 고운 색동옷처럼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의 설빔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