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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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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그시절


BY gentleabc 2003-01-31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60년대초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난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내가사는 마을 가구를 모두 합해도 50가구를 넘지 못했고 어느집의 결혼식이 있을때나 환갑잔치 때엔 온 동네 잔치를 치루곤 했다
심지어 제사 제물을 집집 마다 돌리기도 하고 이른 아침엔 거지가 대문 앞에서구걸을 하면 마루까지 오라하여 따듯하게 대접을 해주던 아주 인심이 풍부한시절이었다
비록 모두들 가난은 하였지만 서로 도우며 웃음 가득한 삶을 살던 시절이었다
마을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이 기성회비를 내지 못하여 수업 중에 집으로 돌려보내 지기도 하고 집에 가봐야 모두들 들녁으로 일하러 갔기에 집에 들려봐야마땅히 수업료 달라고 할 사람도 없을뿐 아니라 설령 식구가 있다 하여도 현금을 보기란 하늘의 별 만큼이나 어려웠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살던 마을은 가게는 없었고 앞 마을에 하나 있기는 했는데 아이들이 현금을 들고가 과자를 사먹는 걸 구경 하기란 하늘의 별따는 것 만큼이나보기 힘들었다
군것질은 고구마나 동네에 가끔씩 오는 뻥 튀김 아저씨한테 부탁하여 만들어진 보리를 튀긴것과 옥수수가 전부이며 쌀 밥을 구경하기도 힘들었지만 방과 후에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들력을 뛰어 다니곤했다
추석 날이나 설에 멀리 사신 친척 분들이 오면 손에 쥐어 주는 돈 몇푼이 일년동안 볼 수 있는 현금의 전부 였던거 같다
학교갈땐 그 먼길을(아마 2 킬로는 되는거같다) 초등 학교 1,2학년이던 우리들이 친구들과 같이한 눈을 팔며 한 시간이 넘게 걸려 학교에 도착하곤 했으며 각학년은 3반으로 구성 되었는데 모두가 시골에 사는 아이들 이었기에 세수도 제데로 하고오지 않은거 같다
감히 도시락은 부잣집의 전유물 처럼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강당이 없어서 졸업식은 교실 세칸의 칸막이를 터서 강당으로 했으며 교사 부족으로 한 선생님이 두 과목씩을 가르쳤고 한반의 아이들은 60명을 넘기던 시절이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구정이나 추석땐 그 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 끼리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며 날밤을 새기도 했는데 이젠 나의 보금자리를 먼 곳으로 옮겼기에 그런 추억을 더듬을 기회마져 없다는게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