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직장으로 새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나보다 세달 어린 새언니가 나에게 전화를 하는것은 유치한 부탁 아니면 유치한 하소연. 자,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 하니까, 또 유치한 하소연이다. 사촌언니들이 자기 남편, 즉 나의 오빠를 누구야, 누구야, 하면서 이름을 부르는데, 아주 기분이 나쁘단다.
"너무 기분 나빠요. 결혼해서 아이아빠인 사람을 그렇게 강아지 부르듯이 할수있나요?"
"주문만 하세요. 그럼, 그 언니들이 뭐라고 불러주시기 바라나요? 원하는데로 부르게 해드리지요."
"음,음,음, 뭐라 그러지요? 뭐라 그래야되요, 아가씨?"
웃겨서.......
뭐라 그러긴 뭘 뭐라 그래. 하하 웃으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그냥, 왠지, 우리 오빠가 자기 와이프에게 사랑을 받고있다,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오빠는 키가 작다. 내가 171 이고 내 여동생이 173 이면, 오빠는 대충 180 은 되어야 하는것이 아닐까. 근데, 오빠는 여동생들과 키가 비슷하다. 엄마는 오빠가 효자란다. 키가 큰 아빠를 안닮고 키 작은 엄마를 닮아서 키가 작아져버렸는데, 단 한번도 엄마를 원망한적이 없다고.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이다.
키같은 시시콜콜한것에 신경을 쓰는법이 없이, 무식하게 대범하다.
그 키 작은, 연년생인 오빠는 내게 하늘이였다.
어릴적 몸이 아프면 오빠에게 갔었다. 오빠는 내가 손가락을 찔리면 손가락에 빨간약을 발라주었고, 넘어져서 무릎을 긁히면 무릎에 빨간약을 발라주었고, 배가 아프면 배 가득 빨간약을 발라주곤 했다.
그리고, 또한 오빠는 나의 아픔이였다.
오빠에 비하여 학교성적이 월등히 좋았던 나때문에 학교에서 성적표 받아오는 날이 오빠 종아리 터지는 날이였다. (그러면서도, 공부는 참 더럽게 안했다.)
오빠는 나의 원수이기도 했다.
나의 신나는 방탕의 나날들. 오빠는 물 좋은 나이트 크럽을 돌아다니며, 나의 체포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로 체포가 되어서, 띨한 오빠를 포섭시켜서 같이 춤추고 술마시고 논적도 있지만, 나랑 같이 놀던 남자아이들과 오빠는 주먹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나의 남편 돼지를 처음 우리 가족들에게 소개시켰을때,
나와 내 여동생이 사귀는 남자는 무조건 나쁜놈이고, 인간성이 나쁘고, 성질이 나쁘고, 성장배경이 안 좋고, 장래가 나쁘고, 뭐든지 무조건 나쁘다고 주장하는 오빠의 괴상한 질투인지 시비인지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참 별나게도 오빠는 울 돼지에게는 호의적이였다.
그때, 오빠가 참 귀엽고 고마웠었다.
이제 아기의 아빠가 되어버려서,
내가 배가 아프든 나이트 크럽을 가든 전화 한통 없는 괴씸한 오빠.
내가 다정하게 전화해서, 야, 모해--- 하면, 어,어, 왜? 왜? 하는 배신자.
오빤 기억하고 있을까.
엄마 없는 텅 빈 집, 괜히 무서워진 나를 위하여 쇼를 하다가, 오빠, 안방 옷장위에서 점프하는 바람에 천장에 달린 등에 머리를 박아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났을때. 우리 같이 엉엉 울면서 깨진 오빠 머리에 빨간약 바르던것.
오빠는 알고 있을까.
오빠가 아직도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직도 내가 얼마나 오빠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내가 자기를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내가 절 얼마나 보고싶어하는지. 다음에 태어나도 나 오빠 동생으로 태어나고 싶다는걸.
엄마가 그러는데, 아들은 키워놔봤자 다 소용없단다.
내 경험으로 보면, 오빠도 키워놔봤자 별 소용없다.
심심한 여동생과 새언니만 하루에 몇번씩 열심히 전화를 해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