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기 전에 으레껏 하는 일이 있다면
욕실에 들어가 걸레들을 빨고 나와
온 방들을 말끔히 닦아내는 일이다.
하루도 거른 일이 없다.
방을 닦지 않고는 잠자리를 펼 수 없다는 게
고집스런 내 습벽중의 하나다.
아무리 피곤하고 술에 만취가 될 때에도 반드시 행하고야 마는 일.
그러고 보니 걸레가 그간 고초가 심했던가보다.
이 밤, 또 걸레를 빨래판 위에 펼쳐 놓고
비누칠을 하려 보니, 닳고 닳아 여기 저기
구멍이 뻥뻥 뚫리어 있다.
올이 다 해어지고 주먹만한 구멍이 군데군데 뚫린 모습을 보니
어찌 그리도 안쓰럽고 처량맞을고.....
예전에 시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절대로 될 수 없는 게 있는 데,
바로 걸레가 행주 되는 일이라고...말이다.
시어머니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당신 대하기가 어려운 때이었으니
뭐라 대꾸하지는 못했지만
난 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알 수없이 치미는
반박의 말들을 가슴속으로 되뇌이곤 했다.
'행주나 걸레나 뭐 별거입니까?
걸레도 행주마냥 늘 빨아주고 삶아주고 말려주고 하면
걸레가 행주되기 쉽다구요?'
그저 시어머니 당신의 절대적인 지론에 대항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거지만,사실 그렇다.
걸레도 만져주고 다듬어 주기 나름 아닐까?
내가 애용하는 걸레감도 거의가
싫증난 수건들이 일순위이고 보면
기실 걸레나 얼굴닦는 수건이나 뭐그리 다를쏘냔 말이다.
사람도 그렇다.
난 영원히 추한 이도,영원히 악한 이도 없다고 본다.
제 본성을 선한대로,고운대로 죽는 날까지
보전하는 이가 있다면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사람으로서 그리 사는 이가,성인군자 이외에
몇이나 될까?
모두 세상의 풍파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치이다 보면
제 성품을 잃은 채 행주같은 삶도 걸레로 살 수도 있는 거라고 본다.
또, 갈기갈기 찢긴 영혼도 옥시크린 넣어 주물주물 빨아대면
눈이 부시게 하얀 영혼이 될수도 있다고도 믿는다.
어떤 스님은 스스로를 걸레라고 하셨다.
나는 걸레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 자신을 걸레라고 까지 말할 자신이 없다.
알고보면 걸레만큼 깨끗하고 숭고한게 없는데 그 어감상
자신이 없다.
제 몸이 해질때까지 남을 닦아주고 정결히 해주는 것,
제몸은 어찌 되든지 간에 아무데고 가리지 않고 문질러
그 때를 벗기워 주는것,
그래서 얻은 오물을 제 몸에 고스란히 간직하다
매일 정갈히 몸을 씻어 죄 많은 것들의. 아니 때 많은 것들의
면죄부가 되어 주는 것,
그런 역활을 충실히 하는 게 걸레 아니던가 말이다.
그러니 난 더더욱 걸레만도 못한 인생이다.
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데 늘 회의적이다.
여직 어딘가에 내 다른 삶이 있을거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열망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진정한 자유와 희생에 대한 정의조차 확립되어 있지않은
어설프기 그지 없는 엄마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다.
그러니 늘 불만이 얼굴그득이고
내가 수고하여 내 아이들과 남편 마음이
순백처럼 하얘지고 정갈해질수 있음을 늘 망각하고
어떤 날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더럽히기까지 한다.
오늘도 아이들에게,남편에게,그들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서 내가 좀 더 닳더라도,
조금 더 해어지더라도,사랑의 마음으로 문질러주고 닦아 주었더라면
참 좋았을걸 말이다.
그랬으면 참 좋았을걸 말이다.
소리지르고 눈 흘기고 원망하고 짜증내었던 시간들.....
걸레는 그러지 않는데.......
난 정말 걸레보다 못한 인생일까....
그러고보면 걸레만큼 내 자신을 빨아주지 못했던것 같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어설픈 변명으로써 도피하지 못하게
나무빨래판같은 고정대 위에 내자신을 올려놓고
거품 많이 나는 정화의 비누로 박박 문질러서,
단죄의 빨래방망이로 흠씬 두들기고
눈물과 땀으로 비비고 또 비벼대면
걸레만도 못한 인생이 그래도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 매일 닦음질한다면
걸레만큼은 되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