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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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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이야기.20


BY 손풍금 2003-01-10

부지런히 서둘러도 아이들 학교갈 시간이나 되야 일나가게 되는데
다른 장꾼들에 비해 내 행동은 해가 중천끝에 달할만큼 게으를 따름이다.

장터에 나갔더니 지난겨울을 끝으로 보이지 않던 톱장사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내자리에 톱과 망치를 깔아놓으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는 다른방향으로 얼굴을 돌린다.
할아버지 앞으로 가서 '안녕하세요. 할아버지'하자
'으응..'하시며 또 딴데를 바라본다.

'할아버지, 여기 제자리인데요. 이렇게 펴놓으시면 저는 어디가서 장사 한데요?'

'웃기는 소리 하덜말어. 내가 여기서 오년째 하는건디 농사일 끝나면 겨울마다 오잖여.여긴 원래 내자리여'하고 발끈 화를 내신다.

'할아버지는 겨울만 하시잖아요. 전 일년내내 하는건데...'

'그런소리 하덜마. 난 이젠 얼마 살사람도 아녀.
내가 애기엄마보다 나이가 먹었어도 갑절은 더 먹었을텐데 내가 일을 해야 얼마나 더 하것어.
나 일하다 죽거던 그때 혼자 실컷 햐..'

'아이고, 할아버지..'웃음이 나오는통에 뒤에 할말을 잊어버렸다.

'지금 기력으로 봐서는 할아버지보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죽겠는걸요. '하자 화난얼굴을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도 웃는다.

'그러지 마시고 그럼 자리를 조금 좁혀주세요. 저도 물건을 덜 필께요. '하자
'그랴. 그럼 그렇게 햐.'하곤 그제서야 적대감을 놓아버리고 친근하게 말을 하신다.

보는사람마다
'자리가 왜그렇게 바뀌었지? 앉을자리도 없네. 저 할아버지는 누구여?' 하면
나보다 먼저 할아버지가
'여긴 옛날부터 내자리였어. 뭔소리들 하는겨'하고 노여워 이빠진 톱가는 쇠소리가 더욱 삐걱거리고 높아져간다.

농협계단 세째자리를 빼앗기고 물건놓을 자리도 좁고 서있을만한곳도 마땅잖다.

가을걷이 끝나고 집안곳곳 손보느냐 녹슨톱 들고 나오는 아저씨들,

그뒤를 따르는 대낮에 쌍코피 흘리고 가는 아저씨 , 잠바는 어깨에 걸쳤는데 티셔츠의 팔 한쪽은 찢어져 어디로 가 없어지고 바지한쪽은 둘둘말아 걷어지고 ...(아...저게 말로만 듣던 쌍코피구나..흐흑)
노인들도 엄마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코를 쥐고 역겹게 술냄새를 풍기는 쌍코피 아저씨를 피하는데
나는 그모습을 보니 狂년이처럼 웃음이 나온다.

그 뒤로 수세미를 파는 아저씨는 양쪽 발가락이 다 절단되었는데 맨발로 다니면서 '수세미 팔아주세요. 이러고도 삽니다.수세미좀 팔아주세요. 발이 시려워요.'한다.
그뒤로 머리가 백발인 할머니는 허리가 구십도로 구부러져 얼굴을 도통 볼수 없는데 땅만 바라보고 가다가 떨어진 빵조각을 주워 가방에 집어 넣는데 오분,
또 걷다가 빈비닐봉투 주워 가방에 넣는데 오분,
다 찢어진 신문지 주워 집어넣는데 또 몇분 ,
바라보는 내 허리가 더 아프고 힘들다.

나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갈곳없어 서성거리는 퐁네프의 연인처럼 걸인이되어 그 뒤를 따르고 싶다.

걸인도 아무나 걸인이 되는게 아니네.
되고 싶은 거지도 못되는 이 거지같은 세상.
차라리 狂년이나 될까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