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남편이 나를 데리러 온다며 전화를 한다.
무슨일인가 대충 짐작하였던 대로 동서네 이사하는 집에 함께 가자고 한다.
며느리라고는 달랑 둘뿐인데 하나밖에 없는 동서네가 요즘 어수선하기 그지 없다.
어느날 마치 깜짝쇼라도 하듯이 발표된 억대의 빚이 있다는 이야기 ...
이해할 수도 납득이 잘 되지도 않는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만 현실 앞에서
그렇게 놀란채로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하루 하루가 돈 새는 소리에
심신이 모두다 지쳐갈 만치 사태는 심각했다.
소식을 접한 시부모님들의 처음으로 크게 화내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 또한 마음 아팠고,
아무 잘못도 없이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야 할 어린 조카들이 불쌍했다.
그 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흐르기만 했으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전세자금도 흔적없이 모두다 날리고,
애써 장만한 집이랑 차, 그리고 그동안 쓰던 가구, 가전제품까지도 다 정리해야만 한단다.
주위 형제들의 도움으로 겨우 조그마한 전셋집을 마련해서
정말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평소에 그네들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아 왔던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집안 식구들 중 나이도 가장 어린 시동생은 항상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녔고,
조카들의 차림도 그렇게 패셔너블하고,
어쩌다 한번씩 집에 들러보면 살아가는 모양새는 그저 모든게 넉넉해 보여서
다 잘하고 사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카드를 사용하여 살아지는 삶인줄은
주위의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이번일을 지켜보면서 나는 새삼 카드가 참 무서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들어오는 수입에 맞추어지지 않은 무절제하고 방만한 생활의 결과가
그처럼 큰 눈덩이같은 빚을 만들어 놓을줄을 그네들도 차마 알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항상 만약을 대비하며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인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부모님의 호된 야단속에는
은근히 큰며느리인 나와 비교하면서 혼나기도 한 모양인데
괜스레 가슴이 움찔하며 나도 지금까지 보다 더 아끼고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무언의 암시를 받게 된다.
한때는 우리 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고, 훨씬 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지금 그네들이 살아가야 할 집의 전세금보다도 비싼 차를 굴리던 이들을
그보다 훨씬 못미치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우리들이
단지 형이라는 이유로, 손윗동서라는 이유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에
괜스리 화가 치민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형이니까 그래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솔직히 짜증이 난다.
그네들이 지금 처한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으로야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좀 고생도 해 보고,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그런 삶의 시간들이 그네들에게는 궁극적으로 플러스적인 요인이 될꺼라는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보며, 그래도 마지막까지 차마 말로는 꺼내 놓을 수가 없다.
새로 이사간 집에 들어서니 발디딜 틈조차 없이 온통 좁은 집에 하나가득
짐보따리가 겹겹이 쌓여져 있다.
물끄러미 그 짐들을 바라다 보며 살아가는데 무엇이 저리도 많이 필요한 것일까?
허공에다 그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좀더 단순하게, 욕심내지 않으며 자신의 분수에 맞에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지지 못할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해 나가는 가정생활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 ...
물질적으로 아무리 구석구석을 채운다 해도
그것으로 다 충족되지 않는 것이 삶이기도 하다는 걸
어느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네들도 느낄 수가 있겠지 ...
안타까움과 씁슬함을 뒤로 하고는 형으로써의 도리를 다하려
늦은 저녁시간까지 저녁도 거르고 우린 그네들을 쉽게 떨치지 못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리를 함께 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부모자식간에는 용서되지 않는 것은 없고,
결국은 형제, 자매간이기에 때로는 누구보다 심한 질타를 해 줄수가 있는 것이다.
결혼후 몇년동안 줄곧 전업주부로 살아온 동서는 이제 새로이 직장을 구할꺼라 한다.
부디 그녀도 자신의 힘으로 돈이란 걸 벌어보고, 어떻게 쓰며 살아야 하는가 ...
직접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으로 앞으로의 시간들을 채워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축 쳐져 있는 그녀의 어깨위에 나는 그런 바램 담은 손길을 얹어 다독이고 있었다.
삶의 내리막이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오르막이 있을 꺼라는 ...
순리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꼭 좋은 일이 있을 꺼라는 ...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