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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함의 유혹


BY 칵테일 2000-12-05


마포에 이사한 후, 우리가족이 처음으로 그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한 음식점.

차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좁다란 골목안에 다들 비슷한
규모로 다닥다닥 음식점이 모여 있었다.

삼겹살집, 세꼬시집....
그러다가 "쭈꾸미숯불구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들어가게 된 집이었다.

겉이나 안이나 허름하기는 매 일반.
그러나 주인 부부는 너무도 친절했고, 그 작은 실내에
손님들이 거의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웬지 모르게 맛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그것은 거의 확실한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맛있는 음식점을 찾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손님이 얼마나 찾는 집인가 하는 거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수저통의 수저를 본다.
수저가 다 똑같은 새것이면 일단은 불안하다.

다소 짝을 찾기는 힘들어도 많이 써서 낡은 듯한
수저들이, 그것도 이것저것 종류도 다양하게 있다면
비교적 오래 영업한 집이란 증거기때문에 맛이 좋을
확률이 높아진다.

세번째는 메뉴.
해물탕부터 삼겹살까지 이것저것 막 섞어 너무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집은, 어느 것 하나 맛이 신통한 것이
없을 만큼 특색이 없는 집이 많다.

대충.... 맨 처음 낯선 음식점을 들어서면 이 세가지를
기준해서 보는 편이다.

그 집을 들어서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세가지 모두가 합격.

손님은 우리가 식사하는 중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계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저는 오래동안 사용한 흔적이 역력할 만큼 적당히
낡아있었고.

메뉴는 쭈꾸미숯불구이 하나로 국한되어있는, 이른바
전문 음식점.

비록 건물이라고 하기도 낯간지러울 만큼 낡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그 집은 맛의 명소로 이미 이름난 곳이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무심코 벽을 보았다가, 신문이나
잡지에 맛있는 집으로 실렸던 기사가 여러개 붙어있는
걸 보고 예감이 확신으로 바뀌던 일.

그동안 쭈꾸미를 집에서 먹는 일은 나로서 거의
없는 편.

낙지나 오징어는 이렇게 저렇게 자주 먹는 편임에도,
이상하게 쭈꾸미를 따로 사서 먹은 일은 없었다.

그런데 매운 양념한 쭈꾸미를 숯불로 즉석에서 구워
먹으니 그 맛이 어찌도 좋던지.

우리가 마포에 사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자주
그 집 문턱을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기에 걸어가도 되는 곳이라,
정말 한달에도 몇 번씩, 어쩔 때는 일주일에도 2번
이상 간 적도 있을 정도.

그 집 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남편은 분당으로 다시
이사온 뒤에도 곧잘 그 집 음식을 그리워했다.

나역시도 그 집의 독특한 맛있는 맛이 가끔씩 떠올
랐고, 마포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 집일 정도.

그렇지만 분당에서 마포는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해서 그동안 이사온 후 한번도 찾아보지를 못했었다.

그랬다가 오늘 마침 책꽂이를 살 일이 있어, 일부러
아현동쪽으로 나가 사고 돌아오는 길에 거길 들렀다.

역시 오늘도 손님은 넘쳐나고, 주인 부부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 우리를 반겨주었다.

세식구가 5인분을 먹고, 나는 바지의 단추를 풀러야
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집의 맛은 우리에게 너무도
강렬한 느낌이고 유혹이다.

평소 거의 과식을 하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서만큼은 오늘 원없이 먹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마포에서 처음 찾았던
그 느낌, 그 맛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그 집의
매력은 아마도 우리 부부에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될 듯 싶다.

맛과 멋의 추억.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기억에 숨겨진 가장 강력한
유혹인지도 모르겠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