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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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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집


BY 잡초 2002-12-27

두달만에 을지병원에를 다녀왔다.
남의돈 먹는다고...시간이 없어 예약날자에 가지못하고
전화로만 예약을 한달 미루었었다.
손가락과 팔이 많이 아팠지만 그런대로 참을만도 하였고
사실..마음과 몸이 이미 황폐해 있는터라 내 몸을 돌아볼 여유가 내겐 없었다.

작은오빠네에게 병원에가서 약을 타다달라고 얼마전에 부탁을 하였었는데
우연히...
남편이 내게 물어왔었다.
" 약은 제대로 먹고있는거니? "
" 아니 못먹어. 병원에 갈 시간도 없었지만 작은오빠네서 약을 타다 준다고 했어 "

순간 남편은 벼락같이 화를 낸다.
약을 어떻게 본인이 안가고 다른사람을 시키냐고...
나는 허깨비냐고...

마음속으로 바람새는 웃음이 나온다.

남편의 차에 올라타고...
난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똑바로 보지도 않고... 창밖만을 바라보는데
남편이 내게 묻는다.
왜 기분이 안 좋으냐고, 왜 저기압이냐고.
할말이 없잔아.
짧은 대꾸로 난 다시 침묵한다.

얼마전 남편이 집에 잠시 들렀을때.
거실장위에 있는 남편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 깨우치면 부처 '
글귀가 보이기에 무심코 핸드폰을 들고 바라보다가
문득 남편을 알고 싶은 생각이 든다.

최근발신목록과 수신목록, 그리고 문자...
이것저것 열어가다가 첫번째는 누가 돼있을까?
호기심이 발동을 한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거실로 나오는 기색이 들리고...
급히 한가지를 열어보니
' 과거집 '
그걸..누르지 말았으면 좋았을텐데...
누름과 동시에 손동작을 멈추었어도 내눈에 선명히 들어온것은
바로 우리집 전화번호.

웃음은 나왔지만 그건 소리로가 아니라 그냥 입모양일뿐.
한쪽 입 귀퉁이가 돌아가며
난... 그 사람에게...아니, 나에게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서둘러 핸드폰을 제 자리에 놓고
난 아무것도 안 본것처럼... 아주 바보처럼 냉정히 나로 돌아온다.

전엔...
남편은 핸드폰의 첫번째 입력번호로 우리집 전롸번호를 해 놓았었고
제목은 ' 여우와 토끼 ' 였었다.
그걸 나와 딸아이에게 보여주며 그리도 함박 웃음을 지었었는데..
이젠... 여우같은 마누라도 토끼같은 새끼도 천국같던 집도..
모두 과거가 되었나 보다.

난 아무것도 보지않았어.
난 아무것도 몰라...
강한 주입을 내 뇌리에 시켜도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남편의 핸드폰이 내 눈에 들어오자
난 시간이 지나는 찰흙처럼 마음도 표정도 굳어만 간다.

병원을 들러 우리집까지 태워다 준 남편이 돌아가고...
마지막 내가 받은 남편의 선물인 내 핸드폰을 열어본다.
일번이 우리집.
이번은 남편.
삼번은 딸아이.

남편이라는 글귀를 지우고...
난 한참을 망서리다 이렇게 적어본다.
' 과거의 남편 '
도리질...
' 잊어야할 사람 '
다시 도리질...
' 잊혀진 사람 '
' 아이의 아빠 '
' 이름 석자 '

벌써 얼마의 시간을 난 ?㎢鳴?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
그리고...
지금은 아예 그 번호조차도 내 핸드폰에서 삭제를 해버린다.
난 여우도 딸아인 토끼도 아니었기에
그 사람 역시도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님을 난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