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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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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94)


BY 녹차향기 2001-07-19

숫자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이유요?
곧 100회가 다가오잖아요.
세월이 정말 빠르네요.
자주 쓰는 글도 아닌데, 이렇게 숫자가 늘어가는걸 보니,
시간이 쏜 살 같다는 그 말 실감이 나잖아요.

오늘 저녁엔 112에 전화를 했었어요.
주방에서 국을 끓이기 위해 감자를 썰고, 양파를 다듬고 씽크대 한가득 일을 벌여놓고 있는데, 창문 가까이 요란하게 자동차가 급정거 하는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쿵,쾅!! 하는 소리가 겹쳐들리잖아요.
얼른 주방 창문을 열고 고개를 길게 내밀고 바깥을 내다보니
(저희집은 17층)
근처 횡단보도에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이고, 승용차 한대가 중앙선을 넘어서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쓰러진 사람은 아마 자전거를 타고 갔던 중이었나봐요.
옆에 자전거가 한 대 놓여있는데, 자전거에 실었던 짐으로 짐작컨데 자전거 임자는 가정주부가 틀림없었어요.
횡단보도와 도로에 흩어져 있는 과일이나 감자로 짐작되는 동글동글한 물건들이 여기저기 함부로 뒹굴고 있었고, 쓰러진 사람은 땅바닥에 코를 박고 꼼짝도 않는데,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모습이었지요.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것 같았지요.
저녁을 마치고 과일을 사러나왔던 주부일거다....
이런 생각이 언뜻 스치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얼른 전화기를 가져다 112에 신고를 했어요.
위치를 자세히 설명하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아까 그대로의 상황이더군요.

근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것은 횡단보도에 파란신호가 들어와 길을 건너던 어떤 사람도 그 현장에 가려하지 않는거예요.
왜죠?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왜들 그냥 자기가 가던 길만 계속 해서 가고 있는거죠?
지나가던 차들도 구경만 할 뿐 어떤 사람 하나 선뜻 내려 그 상황을 정리해주거나 도와주질 않더군요.

약 5분이 경과했을 무렵에야 비상싸이렌을 울리며 112 경찰차가 출동했고, 그 앞에 119 응급구조대 차가 함께 왔더군요.
구조대 사람들이 들것에 다친 사람을 싣고,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저녁내내 그 다친 사람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니 남의 일이라고 그냥 쳐다만 보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마음이 좋질 않았어요.
자꾸 한숨만 나고요.

이웃에 친하게 지내는 웅식엄마도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웅식아빠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조수석에 앉아있다가 마주오는 트럭과 정면 충돌을 했던 경험이 있으신데....), 사고가 나서 다시 의식이 들때까지 그냥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다른 어느 누구 하나 구급차를 불러주지 않았고,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가더랍니다.
결국 사고 당사자인 웅식아빠가 찌끄러진 차에 다리가 끼어있는 상태로 휴대폰으로 회사에 사고를 알렸고, 또 119에 구조요청을 했대요.
기가 막히죠?

웅식아빠 말씀이
내가 세상을 속여본 적도 없거니와 어느 누구에게도 한번도 나쁜 일을 한 적도 없고, 그저 정석대로 착하게 살려고 애쓴 것 말고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 줄 처음 알았다고....
그러셨대요.
아까 쓰러졌던 그 여자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쯤 의식을 회복하고 치료에 들어갔겠지요?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요....
25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도 살아난 여고생이 있잖아요.
그런 기적들이 이 세상에 아직 있는 것을 믿어요.
그러니 많이 아파 도저히 회생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고,
이런 큰 사고에 어떻게 무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던
사람도 참 신기한 일일세...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일어서는 기적이 있는 것을 믿기로 해요.

아줌마들이 어늬 사람들과 다른 점은 바로 그런 거라고 봐요.
지나가는 아이들이 싸워도
"니들 왜 싸우니? 그러지 말아라..."
하고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줌마고요,
넘어진 아이가 있으면 얼른 일으켜 주며 상처를 한번 들여다 보는
사람이 바로 아줌마예요.
불쌍한 걸인에게 동전을 주기 위해 자기 아이 손에 슬쩍 돈을 쥐어주는 것도 아줌마들이고요,
지체장애인들을 위해,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독거노인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봉사활동은 하는 사람들 다 아줌마들이예요.

사고 당한 그 분이 아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어요.
가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를 거 없다고 하는 얘기들 하잖아요?
건강하게, 지금 내가 있을 곳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거
정말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어요.
큰 병없이 하루하루 지내고 있음이 바로 축복이라고 하잖아요.
운전하시는 분들도 항상 조심하세요.
휴~~~~ 자꾸 한숨만 나오네요.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거, 사고난 사람을 방치했던 무심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 때문이겠지요?

밤이 늦었어요.
여러분은 단잠에 빠지셨을테고, 저두 이제 자러 들어가야겠어요.
이제 곧 아이들 방학이 코 앞으로 다가왔네요.
모두 좋은 계획들 많이많이 세우시고요.
모두 건강하시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열심히 사시는 나날들이 되시길 바래요.
전 책이나 조금 더 읽다가 자야겠어요.
얼른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아서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