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어렸을땐 어땠어?"
딸아이가 자리에 누워 까만 어둠 속에서 묻는다.
주절주절 옛 이야기를 듣다 아이는 잠이 든다.
나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세대다.
새벽 어스름에 '딱딱' 나뭇가지 꺽으며 불을 때, 어머니가 밥을
지으면 잠결에 등이 따뜻해왔다.
작은 방에 서로 이불을 잡아 당기다 따뜻이 스며드는 온기에 다시
잠이 들곤했다.
우리 집은 마을어귀에 마지막으로 남은 초가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가 마을에 공동수도가 없어지고,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왔다. 우리 집만 빼고.
당시 수도시설비 13만원을 마련하지 못한 내 어머니는 수도 대신에
파랗고 긴 호스를 사왔다.
그리곤 50m 이상 되는 옆집에 사정을 해서 필요할 때마다 연결해
썼다.
옆집은 내 친구의 집이기도 했는데, 물을 구걸할 때마다 나는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아무리 봐도 나보다 나을 것 없는 그애에게
괜히 화가 났다.
우리가 겨우 마당 안으로 수도 시설을 했을 때, 다른 집들은 이미
씽크대를 놓고 부엌 안으로 수도가 들어가 있었고, 초가 지붕을
걷어 냈을 땐 다른 집들은 세모의 슬레이트 지붕을 없애고 반듯한
네모의 집들로 바뀌어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2기분의 납부금을 냈을 때, 남들은 다 3기분 납부금을 내
있었고, 어렵게 미술 준비물을 사 갔을 땐 이미 그 수업은
마감되고 있었다.
70년에서 어느덧 30년 이상이 흘렀다.
어머니랑 마른 솔잎을 긁어 모으던 겨울날이다.
언 손을 찔러 오던 뾰족한 솔잎마냥 어린시절의 기억은 따끔따끔
나를 찔러 온다.
이제 30년이 흘러 나의 방안엔 이제 코끝 시린 윗풍도 없고,
일부러 불 집히지 않아도 보일러 잘 돌아가건만,
이맘때면 그 초가집 그 겨울날이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워할 이유도 없건만 어린날 그 추웠던 겨울이
생각난다.
아니, 어쩌면 내 어머니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남들보다 뒤쳐져 살아오던 내어머니는 작년 그나마 살아가던
한칸 셋집마저 화재로 잃고, 나이 70이 다 되서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결핍의 기억만 준 어머니지만 '어머니의 결핍'은
이제까지
내가 경험한 그 어떤 결핍보다 더 크다.
어머니 생각에 따뜻한 방이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