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위로 높이 덩굴이 보입니다.
푸른 하늘 바탕에 초록빛 잎사귀위로 얄팍한 꽃잎이 나폴거립니
다.
주홍빛 꽃이 주렁 주렁한 그 꽃의 이름은 능소화라고 했습니다.
화단 한켠에서는 연보랏빛 수국이 곱게 자태를 드리우고
어느 산에서 왔는지 진주황 빛 나리도 참 곱기만 합니다.
연분홍빛 제라늄은 거실 창가에 나즈막히 알콩 달콩 피어 있고,
예전에 그 여자가 키우다 시들해진 파키라 조차 파릇하게 다시 태어
난 듯 시원스럽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바이올렛 빛 작은 꽃 화분들이 여름 실내를 스스로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텃밭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저마다 뜨거운 태양볕에 앞을 다투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할머니네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을 하였
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려다 주려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마련해 주신 밥상은 언제나 넉넉함을 담고 있습니다.
같은 상추쌈도 왜 그곳에선 그렇게 맛있는 건지
풋고추도 왜 그곳에선 그리 달기만 한 건지
고향이 가져다 주는 무언의 선물은 늘 특별하기만 합니다.
담장 뒤켠에서 애호박 하나 따고, 부추를 다듬으며 맛있는 상상에
빠져드는 것 만으로도 이미 묻어나는 행복에 절로 마음이 흥겨워집니
다.
어머닌 한가지라도 더 해서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잰 걸음으로 총총
바쁘시기만 합니다.
벌써 부터 달디 단 밥을 먹고, 얼마간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
뿍 받고 지낼 아이들을 생각하니 흐믓한 웃음이 어느새 저만치에 와
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이른 아침 그곳에서 바로 출근하려고 하니 간밤에는
깊은 잠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도로가의 자동차 소리, 한 시간마다 댕댕 거리는 괘종소리, 뻐꾸기 시
계 소리, 옆에서 나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 등등
그 모든 소리들이 일제히 깨어 있어 잠들기 어려운 밤이 되고 말았습
니다.
이른 새벽 어머니의 새벽밥 하시는 소리를 자명종 삼아
하루를 열었습니다.
아침에 어머니의 화장대에 앉아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는 나이를 먹어도 아름답고 자 하는 마음 여전한 것을....
내 어머니의 화장대를 좀 꾸며드려야지....
그런 생각하면서 엷은 화장을 합니다.
아마도 퇴근길에 그 여자는 화장품 가게에 들르지 싶습니다.
건강하게 여름을 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향기 퐁퐁 나는 바디 샴푸, 샴푸와 린스, 헤어 로션 , 썬크림 등등...
어머니를 위하여 아마 그런 것들을 고르고 있지 싶습니다.
언젠가 그 여자가 큰 맘 먹고 사다 드린 좀 고가의 바디 샴푸도
아끼시느라 그런지 여태 쓰고 계셨습니다.
그만치 힘들게 사셨으니 이젠 좀 펑펑 사셔도 될 듯 싶은데
그게 잘 안되시는 모양입니다.
며느리가 사다 준 거라고 즐겨 입으시는 모시메리도 여러번 빨아
물이 바랜 걸 보니 새로 준비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까슬 까슬하고 시원하며 피부에 좋은 걸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어머니의 생신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라도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그런 며느리이고
싶어집니다.
새벽밥 먹고 출근해서 일찍 배고플 줄 알았더니
어머니의 사랑만큼 세상에서 값나가는 음식은 없는 건지
아직도 든든하기만 합니다.
더위를 모르는 하루, 즐거운 하루가 될 듯 합니다.
왠지 오늘 만큼은....
에세이방의 여러분들도 건강한 여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