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자기들도 부모가 있긴 하지만 울 부모처럼 자식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흔치 않다고 하면서…
결혼해서 11년 동안 자식을 갖지 못했던 울 부모는 뒤 늦게 낳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랑 동생은 부모로부터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자식 중에도 늦동이가 더욱 사랑스럽다는데 울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첫째와 둘째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이 들어 얻은 셋째인 나랑 동생은 안고 젖을 먹이노라면 사랑스러운 마음이 절로 솟아나더라고…
울 아버지의 눈을 보면 난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억지를 부리든 다 통과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누나는 막내딸이니 떼 쓰고 어리광을 부려도 되지만 넌 우리집 큰 아들이니 그러면 안된다.”
아버지는 공공연히 어리광 부리고 떼를 써도 좋다고 내게 허용한 셈이다.
사실이 그랬다.
친척들이, 마을 사람들이 자식을 저렇게 키워서 어떻게 하려느냐고 쑤군거릴 정도로 울 부모는 자식을 귀하게 길렀다.
당신들은 손 끝에 피가 맺히도록 일을 하면서 우리는 공주처럼 왕자처럼 받들어 키웠다.
자라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만 미워한다고 불평이 많던 둘째 언니가 결혼하고 나서 형부가 그랬다고 하였다.
가난한 농사꾼 딸이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순전히 공주마마처럼 군다고…
그런 부모랑 살면서 그 중에도 유난히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울 부모가 조건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었는지에 대해선 선뜻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자라고 나서는 부모도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물론 여전히 다른 부모들에 비하면 자식 사랑에 눈 먼 분들이었지만…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부모도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더욱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울 부모를 닮아서인지 나도 자식 사랑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맞벌이 하면서 연년생 두 아이를 기를 때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낮에 젖을 먹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우유와 모유 수유를 병행했고 밤에는 연년생 둘 모두 데리고 자기를 고집했다.
둘 다 데리고 자면 잠이 부족할 테니 하나는 할머니가 데리고 자겠다고 하였지만 둘 다 옆에 두고 자고 싶은 욕심에 난 한숨도 못자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둘 다 옆에 끼고 잠을 자곤 하였다.
잠들어 있는 두 녀석을 바라보며 힘들다는 생각보다 사랑스럽다는 생각에 좋기만 하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부모의 사랑은 주는 것이 기쁨인 줄 알았다.
조건 없는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이 말썽부릴 때 알았다.
난 말썽부리는 아이들에게 분명히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며 키웠는데 너희들이 나에게 이럴 수가…’하는…
남편도 아이들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애쓰며 살았는데 자식들이 그럴 수가 없다면서…
남편이나 나나 자식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쏟았더라면 서운함을 느끼고 분노할 까닭이 없었다.
주는 것으로 족한 사랑이라면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면 남녀간의 사랑이야 말해 무엇하리요.
어떤 사람은 짝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짝사랑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성가심이고 짜증스러운 것에 불과하니까…
짝사랑은 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집착이며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폭력일 수도 있다.
그럼 세상에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 말썽부릴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한 없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을 수만 있다면 내 아이들이 방황하다 결국은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한 없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내겐 그런 한 없는 사랑이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조건 없는 한 없는 사랑을 아이들에게 쏟아보려 했지만 내 안에는 그런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마약한다는 아이들과 어울려 가출을 일삼는 딸과 컴퓨터 게임에 빠져 폐인이 되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되돌릴 만한 한 없는 사랑이 내게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울 아버지의 사랑도 생각하고 울 어머니의 사랑도 생각하며 내가 알고 있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든 사랑을 떠올려 나도 그런 사랑을 흉내내 보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그 뒤에는 자식에 대한 섭섭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도 너희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하는…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속에 도사린 섭섭함을 눈치채고 있는 듯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간섭이라고 말했다.
화가 부글거리는 내 속을 들여다보고, 섭섭해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을 바라보며 나도 인정했다.
내가 그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 아이들의 삶에 간섭하는 것일 수 있음을…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실 난 나 자신을 위해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길 바란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었다면 그들이 삐뚤어질 때 화가 나고 섭섭한 마음보다 안쓰럽고 아픈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고 섭섭한 마음이 분명 안쓰럽고 아픈 마음보다 앞서 있었다.
아이들의 인생보다 내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누구의 부모보다 헌신과 맹목으로 우리를 사랑했던 부모와 자식 사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의 사랑에 대해 그것이 과연 무조건적인 사랑인가를 생각해 본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간에게 주기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예수의 탄생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