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야,
이름이 참 곱구나..
우리 집 앞마당에는 배나무가 서너그루가 있단다.
아줌마가 잘 몰라서 그러는 지,
우리 집 배꽃은 지난 달까지도 피어 있더구나.
꽃이라 함은 봄, 아니면 여름에 소담히 피는 게 아닌가?
아, 가을에는 국화가 지천이지.
여하튼 가을걷이가 다 끝나고도 우리 집 앞마당 배꽃은 활짝 피어 있더구나.
찬 서리 내리도록 피어있는 배꽃이 생경하기도 했지만
참 고왔어, 작고 앙증맞은 꽃들.....
사람이 오래 비워둔 집이라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잡초와 넝쿨들로 배나무가 묻혀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더구나 .
그런걸 어느 한여름,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처음 해보는 낫질을 했더란다.
그랬더니 ,키 작은 배나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더구나.
그게 배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던건
못생긴 배들이 간신히 서 넛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지.
좀더 익기를 기다려 좀 더 먹음직 스러워지고 우리가 시장에서 보던 것처럼 모양새가 좀더 예뻐지면
우리 딸 둘에게 하나씩 먹일 량으로 아줌마는 가끔 배나무에게 눈길을 주며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태풍님이 지나가시면서 우리 배들을 가만 놔두시지 않으셨지.
정전이 되고 단수가 되는 난리통을 지나고서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배나무에게로 안부를 물으러 가니
글쎄,기대도 안했는데
배 하나가 용케도 그비바람에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매달려 있더구나.
이화야,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과학적 연구 보고가 있다더구나.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 배 하나는 무슨 생각으로 버티어 냈을까?
사람도 서있기에 너무나 거세고 모진 비바람이었는데
그 속을 꿋꿋이 견뎌내게 했던 배의 의지는 무엇이었을까?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마도 우리 이화가 사랑하는 엄마의 맘과도 같은 건 아닐까 싶다.
그 배나무는 저를 심어두고서 옆에서 지켜보고 사랑해주는 사람의 손길이 좋았는 지도 몰라.
근데 그 주인들은 잡풀속에 무참히 팽개쳐 두고 떠나버렸어.
그뒤, 우리가 이사와서는 저를 알아봐주고 사랑해주니
그 배나무는 얼마나 좋았을까?
비바람속에서도 꺽이지 않고 열매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지 않았을까?
자신을 알아봐주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란다.
엄마에게도 틀림없이 예전에 아빠가 자신을 알아봐주고 사랑해주시던 기억들이 있으실꺼야.
그걸 놓치시기 싫으실거야.
아줌마가 주제넘은 얘길 한 건 아닐까?
이화의 이름을 보는 순간 우리집 배나무가 떠올라 얘기한 건데....
아줌마가 하고픈 말은 아빠를 기다리는 엄마를 이해했으면 해서....
그 배하나는 결국 어찌 됐는 지 아니?
추석을 지나고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착실히 여문 열매를
어느날 이웃집 할머니가 쓱쓱 닦아서 맛있게 드시고 계시더구나.
아줌마랑 대판 싸우셨단다.
그건 여늬 배가 아닌 데 말야,그래서 싸웠어.
그래야 배나무에 대한 도리가 되지 않겠니.
배나무도 마음 아팠을거야.
제 주인을 못 찾아가는 마음....
이화야, 너랑 너희 엄마가 어떤 분이신지 보고 싶구나.
배나무와 배꽃같은 그런 모습일까?
언제 한번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환영이겠다.
어줍잖은 아줌마 글 용서하고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