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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큰 아이와 막내 아이...


BY 들꽃편지 2001-07-17

며칠전부터 우리집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것도 작지 않고 큼지막한 놈이였다.
어디에서 살다가 왔는지 의심스러웠지만
나쁜 생각을 하면 더러우니까 생각을 안하려고 관심을 꺼버렸다.

난 우리집에서 살든지 말든지 잡을려고 폼도 잡지 않고
시큰둥하니 날아 다니는 건만 보다가 이내 다른일에 몰두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요것이 집안을 샅샅이 훑고 다니는 것 같았다.
어느날 아침에는 컴퓨터를 들여다 보다가
어느 때는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이의 책상에서 책을 고르기도 했다.

조것을 잡아? 뭘로?
책으로 퍽!
아님 주걱으로다 철썩!
그것도 아님 손으로 와락!

이것도 저것도 귀찮고 자신이 없어 관두고 있었는데...

며칠전 막내(초2)가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어디에 있다가 파리가 나타났는지 막내 책상에 와서는
책상귀퉁이에 앉았다가
정신을 집중 하려고 하는 머리에서 맴돌았는지
막내가 하는 말
"엄마! 파리가 자꾸 기웃거려요?"
그 말이 얼마나 재밌고 아이다운 말이였는지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잠잠해졌고...

또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난 어제...
큰(중3)아이가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파리가 또 나타나서는 컴앞에서 까불고 있었나보다.
큰 아이가 씩덕씩덕 하는 것 같더니
큰 아이가 하는 말
"엄마! 파리가 나한테 얼쩡거려"
어쩜 같은 파리를 보고 표현하는 말이 저리 다를까?
난 며칠전 있었던 동생 얘기를 해줬더니
큰 아이도 막 웃는다.

저 파리를 어찌해야 하나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하던일을 계속하고 말았다.

오늘 늦은 아침을 맞고,
청소를 했다.
큰 아이에게 청소기를 밀라고 하고
난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다니며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엄마! 파리가 청소기 속으로 들어갔어?"
우리셋은 청소기가 있는 쪽으로 모여 들었다.
"파리가 얼쩡거리길래 청소기를 휘둘렀더니 빨려 들어갔어"
큰 아이는 재미있으면서도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막내는 정말이야 그러면서 아하하하 굴러가며 웃었다.
"청소기속에서 알 낳으면 어떻하지?"하면서 누나를 쳐다보고 또 굴러가면서 웃었다.
"숨막혀 죽지 어떻게 알을 낳냐!"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선 이내 청소기를 밀었다.
태연하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막내는 자꾸 재미있다고 웃고 또 웃는데...

큰아이는 여자고 지금 사춘기가 한참이다.
매사에 불만이 많고,
말이 없고 동생을 무시하고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곤 한다.

막내는 남자고 지금 한창 호기심이 많고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누나가 제일 무섭고,
연필을 몇자루씩 넣어주면 며칠만 지나도 빈필통을 덜래덜래 가지고 다닌다.

두 아이를 보면서 세월을 본다.
큰아이 초1학년 때 막내가 태어났다.
처음엔 귀엽다고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하더니
막내가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까 귀찮아 하더니
유치원을 다니니까 걸리적거린다고 미워하기까지 하더니
이제는 내가 없으면 밥도 차려주고 숙제도 봐주고 잔소리도 하면서
잘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두 아이를 보면서 흐르는 세월을 볼수가 있다.

두 아이를 보면서 사는 방법을 본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별로 대화는 없지만
둘이서 설거지도 같이 하고
간식도 같이 나눠먹고
컴퓨터 한 대를 가지고 서로 양보를 해 가면서 쓴다.
큰 아이가 우선이고 훨씬 많이 하지만 동생이 하고 싶다고 하면
"기달려"단답적인 말을 하고선
내가 화를 내지 않을 만큼 적당히 쓰다가 동생에게 양보를 한다.
그래서 두 아이를 보면서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서로 방해하지 않고 도와가며 찾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큰 아이가 막내를 구박하면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면 남자라서 너 보다 키도 크고
그래서 네가 꼼짝도 못할수도 있어 너무 구박하지 말아라"
그러면 큰 아이는 그런다.
"그때는 난 늙어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다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면 큰 아이는 시집갈 나이가 된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날아가도 우리집은
막내가 누나에게 꼼짝할 수 없는 나이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막내는 가끔 그런다.
"엄마,저요.막내하기 싫어요"
그러면 큰 아이는 옆에 있다가
"난 맏이하기 싫다. 그것이 니 맘대로 되는 게 아니야 멍충아!"
그렇다.
태어나 살아나고 살아가는 것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우랴!

한동안 우리집에 어울리다 간 파리도 자기 맘대로 살아나질 못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