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그것은 십 년만의 해후였다. 그녀의 손을 잡기가 쑥스러웠다. 십 년이라는 세월 때문만은 아니었다. 회색 장삼이나 파르라니 깍은 머리 때문도 아니었다. 맑고 투명하게 그녀의 존재를 휘감고 도는 어떤 기운이 우리의 추억조차도 잃어버린 꿈처럼 단절시키고 말았다.
공원 벤치에서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할 말도 물을 말도 없었다. 우리가 그토록 다정하게 밤을 새워 나누곤 했던 그 많은 이야기느 어디로 간 것일까.
고등학교를 갓 입학해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때, "집이 어디야?" 하면서 그녀가 해맑은 얼굴로 나를 따라 왔다.
그리고 그날, 십리 가까운 들길을 걸어서 우리 집까지 왔다가, 그녀의 자취 집까지 바래다주길 두 번이나 했었다. 들판의 아지랑이에 감동하면서, 막 갈아엎은 논두렁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에 취해서, 아니 우리들 인생의 봄 냄새에 취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가 내 인생에 끼어 들었다. 함께 수많은 밤들을 지새우며 미래를 설계하고, 약속도 했었다. 결혼하지 말고 함께 살자고, 예쁜 아기를 둘만 입양해서 꽃처럼 키우자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의 등불이 되자고, 아 저녁 강가를 함께 거닐고, 때로는 이른 새벽에 첫차를 타기도 하고, 뜰에 들국화를 심자고, 그런 약속들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맞선을 보기 시작했고, 나 또한 한 남자를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는지 나는 덧없는 불장난에 휘말리고 말았다.,
더구나 그는 동생의 뒷바라지만 끝나면 출가하여 수행을 하겠다는 구도자였다. 그렇게 나의젊은 날의 방황은 시작됐다. 그의 존재를 잊기 위하여 3년여 세월을 휴일마다 등산을 했다. 가능하면 먼 곳으로 떠나고 되도록 높은 곳을 찾아 오르곤 했다. 그런 인연쯤 홀가분하게 털어 낼 수 있다고 자만했지만, 나의 이십대는 온통 방황으로 얼룩졌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질긴 인연이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가 있는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스님이 운영하는 강릉의 한 영아원에 자원을 했다. 그렇게 그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영아원에서는 돌이 지나고 두 돌이 아직 안 된 아기들 열 다섯 명이 내게 맡겨졌다. 이른 새벽부터 우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돌아서면 오줌을 싸고 똥을 싸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십 사 시간을 쉬지 않고 긴장해야 겨우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렇게 일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곳의 생활에 적응이 되어 모처럼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싶었을 때 원장 스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강가로 뛰어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온종일 강변을 거닐다가 문득 그를 생각했다. 그를 잊기 위해 떠났으나 절벽같은 외로운 마음속으로 그가 또 묵묵히 들어 왔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날 밤 그는 막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첫아이를 낳고 한 달도 못되어 그녀가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내게 전화조차 하지 않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십 년이 어느덧 흘러가 버렸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그녀는 나를 이끌고 호암 아트홀로 갔다. 그 곳에서 청동기 유물 전시회가 있었다. 청동기 시대의 생활 도구와 무기, 제정 일치 시대였던 만큼 제사장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많은 제구들이 전시되었다. 나는 무료하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멈췄다. 그것은 낡은 기와 조각이거나 흙덩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청동 거울이라는 명패를 달고 거기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녹슨 시커먼 쇳덩이가 거울이었단 말인가. 엄숙하게 신을 부르는 제구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멍하니 그 곳에 서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철로 된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면 거울이 들어 날까. 얼마나 정성을 들여 오랫동안 문질러야 할까.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녹슨 쇳덩이는 오fot동안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녀에게 기약도 없이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면서도 나는 온통 그 청동 거울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나는 생활 전선에 뛰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산다는 것은 결국 업장을 닦는 일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을 되새기곤 했다.
기도를 시작했다. 혹 어려워진 남편을 원망하게 될까봐 자신을 더욱 다잡았다. 가끔 찾아가는 절의 스님께서 백 일만 남편에게 삼배를 해 보라고 하셨다. 그것은 참 좋은 기도였다. 처음에는 그를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고, 어느 순간 대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우리들의 본질을 찾기 위한 기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성불하십시오."
성불이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나는 절을 했다. 아침마다 백 팔 배를 하고 어느 토요일 삼천배를 올리러 절에 갔다. "모두가 다 성불하소서." 천 배를 하고, 십분 간 쉬었다가 또 천 배를 하고, 마지막 천 배를 올리는 데 이상했다. 몸이 너무 무거우니까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염주가 아무리 돌려도 전혀 돌아가지 않는 듯 했고 시계의 분침도 움직이지 않는 듯 했다. 꿈을 꾸고 있는가. 나는 손등을 꼬집었다. 아팠다. 꿈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질 않았다. 염주가 돌아가질 않았다.
아미타 부처님의 전신인 법장 비구가 세제제왕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성불 할 수 있습니까?" 세제제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닷물을 숫가락으로 퍼내어 말리듯이 수행 정진을 하면 이루지 못할 게 무엇이고 얻지 못할 게 무엇인가." "바닷물을 숫가락으로 퍼내듯이" 나는 마음 속에 간직한 녹슨 동경을 꺼내어 수세미질을 시작했다. 언제 그것이 맑은 본체를 드러낼 지 아득하지만 그날 밤 염주는 다 돌아가고, 좌복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시벽 세 시였다. "바닷물을 숫가락으로 퍼 내듯이 " 나는 부처님의 귀하신 말씀을 받들고 법당을 나섰다.
새벽 하늘에 별이 빛나고, 소쩍새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