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아프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귀에서 멀리하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벌써 한 시간 가까이 되었다.
딸의 친구 엄마라고는 해도 사실 서로를 잘 모르는 처지다.
그런 나랑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지나 엄마는 수다를 멈출 줄 모른다.
내가 흥미 없어 하는 눈치도 못 채는 모양이다.
간신히 전화를 끊고 나서 저절로 한숨이 휴~하고 나왔다.
드디어 지루한 전화 통화가 끝났음에 안도하며…
처음 지나 엄마가 전화를 하던 날 있었던 이야기다.
그 후로도 지나 엄마는 전화를 하면 끝낼 줄을 몰랐다.
지나 엄마 전화를 받으면 ‘또 걸렸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할 정도로…
남편과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았다.
철물 공장을 경영하는 집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경제적으로도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집이라고 하였다.
그 부부는 처음 만난 나를 앞에 두고 자식 자랑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쉴 새가 없었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 앞 다투어 입에 침을 튀겼다.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듣던 나는 차츰 시간이 흐르자 그 자리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아침 일찍 흰개미 검사를 위해서 찾아 온 아저씨는 일이 끝나고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 본 아저씨였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서로 아는 것이 없는 사이였다.
아침 출근 준비에 쫓겼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식사를 같이 하자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나를 상대로 아저씨는 수다만 늘어놓을 뿐 식사는 언제 끝내려는지 수저의 움직임은 느리기만 했다.
결국 몇 번씩 ‘시간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간신히 쫓아내다시피 그 아저씨를 앞세우고 현관문을 나서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여섯 시 정각에 현관 벨이 울렸다.
남편 친구 부부가 오기로 했었기 때문에 서둘러 현관으로 나갔다.
낯 선 아저씨가 술병을 들고 서 있었다.
어리둥절해서 누구냐고 묻는 내게 옆집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눈치를 챘다.
이사한 후 옆집에 한국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고 몇 번 음식을 들고 찾아갔어도 아이들만 있고 집에 없었던 옆집 남자라는 사실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잠깐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들어 온 옆집 남자는 손님이 오기로 했다는 말에도 돌아갈 줄을 몰랐다.
결국 손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술을 못하는 남편과 남편 친구 대신 혼자서 자기가 들고 온 커다란 백화 수복 한 병을 거의 다 마셨다.
남편 친구 부부와 우리는 옆집 남자 수다에 마지못해 가끔씩 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그 날 저녁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 살면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을 보면 마치 막혔던 둑이 터진 것처럼 말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상대방이 자기 말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살필 여유도 없는 사람 같다.
그저 자기 생각이나 자랑을 쏟아 놓기에 바쁘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한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유난히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그 만큼 외롭다는 뜻일까?
그런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한국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 중의 어떤 이들은 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한국 사람을 만나면 막혔던 둑이 터진 것처럼 말을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한국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미국이 좋다고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아도 미국 사람보다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영어보다는 한국말이 귀에 반갑다.
불청객이 되어 우리의 손님 맞이를 망쳐버린 남자가 옆집에 살아도 그 집에 나랑 같은 한국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어쩐지 믿음직하다.
우리 집 앞을 지나는 동네 아이들이 모두 귀엽긴 하지만 옆집 아이들을 보면 내 조카라도 되는 듯 더욱 반갑다.
그렇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건 죽을 때까지 한국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한국 사람이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 속에서 내 모습을 본다.
그들 속에 내 모습이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