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라크 의회가 9살 어린이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 시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3

누룽지와 전쟁


BY 김경숙 2000-09-08

우리 집의 별미 간식은 누룽지이다.
저녁 식사 후 남편은 냄비 속에 남아있는 밥을 다른 그릇에 담아 놓고 숟가락으로 누룽지를 긁어 식탁에 앉아 큰 아이와 함께 먹는다. 누룽지를 즐겨하는 남편과 아이 때문에 나는 항상 밥을 냄비에 한다. 전기밥솥을 이용하면 완료될 때까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냄비에 밥을 하다보니 밥물이 끓어 넘칠 때도 있고 더러 냄비를 태우기도 한다.

남편은 별반 간식이 없었던 어린 날 냄비바닥의 구수한 누룽지의 맛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누룽지의 구수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는 반대로 누룽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누룽지가 있으면 긁는 대신 물을 잔뜩 부어 누룽지탕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 누룽지탕을 엄마는 늘 식구들에게 조금씩 건네주곤 하셨는데 그 때 나는 그게 왜 그리도 먹기 싫었던지....

처음엔 냄비에 밥을 하지 않겠다고 남편과 다툰 적도 있었다. 내가 안 좋아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냄비를 씻는 일도 쉽지가 않았기에... 그러다 주말이면 남편이 직접 냄비에 밥을 하였고 적당하게 만들어진 누룽지를 큰 아이와 함께 보란 듯이 먹곤 했다. 나에게는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요즘 나는 아빠를 닮은 큰 아이까지 누룽지타령을 하는 통에 본의아니게 누룽지를 만들고 있다. 남편은 아이와 함께 누룽지를 먹어면서 구수함이 덜하다든가, 바삭바삭함이 별로 없다 등의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저녁 식사 후면 꼭 냄비뚜껑을 열어 본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저녁을 먹자마자 금방 잠이 들어버렸는데 늦게 퇴근한 남편이 그만 냄비 속의 누룽지를 다 먹어버린 적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아빠가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다 먹어버린 것에 분개하여 아침부터 나에게 누룽지를 만들어달라고 떼를 쓴 적도 있었다.

누룽지, 구수함과 바삭바삭한 맛의 즐거움 때문일까, 가끔 우리집에는 누룽지만큼이나 재미있는 전쟁들이 벌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