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기 좋은방)
왼종일 노동에 몸풀고
지쳐 들어온 방.
아이들 운동화 뽀득뽀득 잘말라 신발장 위에 올려있고.
건조기에서 꺼낸 세탁옷.. 다림질 하는데
곧게 곧게 다려지는 흰칼라에 헝클어진 생각 함께
정연하게 다림질 하고 싶다.
창틀에 올려놓은 봄꽃.
참..어여쁘다..어여뻐...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 어여쁨에 무너지는 종이꽃 같아라.
아이들의 고른숨소리..
모두 다 잠든 밤.
불꺼진 창가에 찾아오는 별빛.
고독함에 상심 깊어라.
희망도 비웃음이 되더라.
사랑도 자학이 되더라.
내가 너이고 싶더라.
나를 버리고도 싶더라.
깊은밤이 떠도는 영혼을 불러들이기도 하더라.
지상의 방한칸.
오늘 처럼 숨어있기 좋은방.
****
날씨가 많이 추워져 잠바를 입고 나섰다.
통영고속도로를 타고 금산을 가면 20분 밖에 안걸린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거의 한시간정도 걸린 거리였는데... 무주와 금산가는 방향표를 보고 고속도로를 올라서 신나게 달리는데 얼라리~~!!
한참을 가다보니 경부고속도로로 되어있다. 판암톨게이트가 나오고 옥천이 나오고.. 저쪽으로 대전하고 서울가는표지판이 보였다.
(이게 대체 워찌된일이래....분명 통영고속도로로 올라왔는데 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있지? 이게 뭔일이래..)
내 종종 겪는일이다. 멍청해서리..
다시 거꾸로 올라가 사람이 별반 없는 국도를 타고 금산을 향해 달린다.
빈들녘에 갈대가 부드럽게 춤을 추고.. 아직도 혼자 들녘을 지키고 있는 허수아비.. 내려가 모자 푹 눌러씌워주고 싶다.. 너무 외로워 보여서.
금산이 다 가는가 싶는데 앞에 또다시 대전가는 통영고속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이게 뭐여? 대체... 나 시방 귀신에 홀린겨? 또 다시 대전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저쪽 샛길로 돌아서 삼십분만 더가면 금산이고 통영고속도로 타면 십분 더가면 금산이란다.
나 죽어도 샛길로 같다.
또 다시 대전나올깨베.. 이 쑥맥 하는짓이 늘 그렇다.
아무튼 가다보니 금산은 나왔다.
이제 자리잡을 일이 문제다.
인삼시장을 지나 시내를 두어바퀴 뱅뱅 도는데 도대체 어디에 자리를 펴야 하는지.. 막막하다.
차를 세워놓고 우체국으로 들어갔다.
난 우체국이 참.. 좋다.
우체국 창가에 앉으면 마음이 편해온다.
어제 밤에 써논 편지를 꺼내 일부러 창구에서 편지봉투를 샀다.
시장에서 사면 한장에 십원인데 우체국에서 사면 한장에 오십원이다. 이렇게 작은돈으로 여유 부리고 싶다.
괜히 급한척하고 편지도 등기로 붙인다.
이제사 조금 안정이 된다.
밖으로 나가 시장길을 다니는데 저기 아저씨들.. 영동장에서 장사하는 아저씨들이 모여있다.
그중 한 아저씨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눈물나게 반갑다.
하루죙일 서있어야 물어오는말에 답이나 할뿐 말한마디 없이 살랑거리는 멋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나를 아는척 해주는게 눈물나게 반갑단 말이다.
내 자리 못잡았다는 말 꺼내기전에 아저씨들...
그 복잡한 장터속으로 차 끌어다 세워주고 물건내려주고 자리 마련해준다.
장터속에 섞여있는 황금장 여관앞.
대낮인데도 여관마당엔 승용차가 꽉 차있다.
수시로 다방아가씨 들락 거린다.
옷장사 아저씨.."에이.. 장사할맛 안나네..저눔들 팔짜는 뭐고 또 내팔짜는 뭐여?" 그리고는 그 말끝에 겸연쩍어 내 눈치를 슬쩍 본다.
내 그게 무슨 소리인지 다안다.
울 신랑이 맨날 그런소리 잘하니까...
저렇게 대낮에 여관들어가 있는넘들.. 내 세상에서 저런놈이 젤 부럽다. " 하는소리 귀에 딱쟁이 앉도록 들었다. 울 신랑한테.
자판기 커피를 뒤로하고 손수레 끌고 커피파는 아주머니 불러세워 커피를 돌렸다.
그때 다방아가씨 또 살랑살랑하고 커피잔 들고 여관안으로 들어간다.
옷장사 아저씨.. "이 추운데서 마시는 커피맛에 비하것냐... 어차피 드러운 팔짜인것을
에라이.. 장사나 열심히 하자.." 그것이 정답입니다요.
저녁해가 일찍 떨어진다.
오늘 금산장은 황금장 여관앞이라는것만 빼면 장사가 잘된 유쾌한 시간이였다.
저녁먹고 온다면서 잠시 봐달라며 식당으로 아저씨들이 떠나고 나도 집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한 아저씨 승용차 안에서 계속 이곳을 바라본다.
시선이 불편하여 뒤돌아서 있었다.
그 아저씨 언제 옆에 왔는지 자판기 커피를 건넨다.
좀 받기가 그랬다.
"추운데 이거드세요.. 많이 파셨어요?"한다.
"네에... 잘마실게요.."하고 받아 의자위에 올려놓았다.
"추운데 드세요.. 이 물건 다 사면 어느정도 되요?"하고 묻는다.
"왜.. 다 사실거예요?"하고 되물었다.
"아니.. 살수도 있지요.. 뭐.. " 대답을 안하고 짐을 정리했다.
남자 쭈삣쭈삣 하더니 "저어.. 아주머니 . 제가 이 물건 다 팔아드릴께요. 추운데 저 방에 들어가 몸녹이고 가세요.."한다.
(저게 무슨소리래.....)
난 화가 나면 흥분을 해야하는데 착 가라앉는다.
온몸에 피가 아래로 내려가나 보다.
그리고 느린말이 한없이 더 느려진다.. 감당못할만큼. 말배우는 어린아이처럼...
" 그.. 게... 무..슨... 소....리 .... 래..요?"
"제가 물건은 다 팔아드릴께요. 추운데 방에서 쉬었다 가라구요." 한다.
화를 내야 하는데.. 소리를 높혀 저사람을 혼내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없이 화만 정신없이 난다.
저사람한테 소리를 막 질러.. 혼내줘야 하는데.... 어찌해야 하나..
"다시.. 말 해..보...세....요.......
그러니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차로 들어가 휭하고 사라진다.
두다리가 후들거리고 기운이 죄다 빠진다.
물건을 싸는데 물건을 자꾸만 놓친다.
발을 딛고 있는 땅도 흔들거리다.
시장아저씨들이 돌아오고 물건을 접어 집으로 돌아오는길..
시장을 벗어나 문닫힌 우체국이 보이는 거리에 멈추어서 한참을 있었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업드려 있었더니 어깨가 들먹거린다.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고속도로를 잘 타야 집엘 바로 가는데... 더 어두워지기전에 집에 가야하는데..
더듬더듬 찾아간 길.. 고속도로를 타고 나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지르고 싶어.. 아악///....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런데 눈물이 나오는거다.
울면서 달렸다..엉엉엉...하고.. 그렇게 울면서 이십분을 달리니 속이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