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우리 시댁은 부여에 있습니다.
집 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고, 마당에는 나무들이 그득하고,
철철이 피어나는 꽃들과, 파릇한 금잔듸로 늘 푸른 집입니다.
시아버님께서는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이제는 텃밭을
일구시며 두분의 노후는 오순 도순 그리 사십니다.
여보, 당신, 다정한 이야기 나누시며, 도란 도란 그리 사십니다.
그런데, 아버님 건강이 안좋아 지셔서 걱정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젊은 아낙때부터 이날까지 아버님 병수발에 지극 정성이
십니다.
정말이지 어떨땐 많이 애처럽고 안스럽습니다.
아버님은 건강이 악화되셔서 재직 기간 중 10년 가량을 휴직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수입 없이 10년 가량을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며, 병수발과 함
께 가난한 살림에 오남매를 키우셨다 하십니다.
그 고단한 시간 다 지나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지금은 그저 두 분 건강하시고, 마음 편히 노후를 보내시길 바라는 마
음만 간절합니다.
항상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시는 어머니께서는 참 부지런도 하십니다.
새벽5시면 어김없이 밭으로 나가시어
집에서 먹는 야채며, 고추, 마늘, 양파, 고구마, 도라지 등등....
밭에서 나는 왠만한 식물들은 다 손수 일구십니다.
두분 노인네께서는 지금도 때때로 농사일 때문에 언성을 높이시어
다투시기도 하십니다.
그런 것 마저도 제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기만 합니다.
아름답게 늙어 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을 거저
누리는 것일 테니까요.
너무 힘이 드시는 날, 기력이 딸리시는 날
그런 다툼이 있으신 듯 합니다.
그래도 도회에 사는 자식들에게 무공해 채소를 나눠 주시는 즐거움,
집에 다녀갈 때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고저 하시는 사랑의 마음을
접기는 어려우신 건지 이제 그만 지으라고 해도
텃밭 일구는 일에 열심이십니다.
두분을 바라다 보면서
문득 우리들의 노후를 그려 보고,
부부란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늙어 가야 할테지...
하는 걸 느끼기도 하며, 한 번씩 뵙고 오면 마음이 아려 옵니다.
제가 맏며느리라 그런지 우리 시부모님들 각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그런지 늘 큰며느리에겐 더
신경을 써주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아버님의 사랑은,
지난 10년 세월을 직접 기른 채소로 김치 담아서 바리 바리 보내주시
는 우리 어머님의 며느리 사랑은
정말로 제가 축복받은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합니다.
아이 사랑 또한 각별 하시어 큰 아이는 두 돌때까지, 작은 아이는
5살 때까지 키워 주셨습니다. 작은 아이는 정이 들어서 그 때까지도
보내시기가 영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크십니다.
그 큰 사랑의 힘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직장에 잘 다닐 수 있음은
제게 너무도 큰 행복입니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따릅니다.
늘상 보고 싶어 합니다.
낳자 마자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직도 그곳에서의 추억을
이야기 하며, 마음속에 그리운 고향 하나 키우고 삽니다.
엄마와 떨어져 살며, 주말 마다 만나며 그리 살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내리 사랑을 고스란히 받으며 무럭 무럭
자랐습니다.
마음 따뜻한 아이들로....
그러고 보니, 전 참 행복한 사람이지요.
그런 부모님들을 만난걸 보니....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 데리고 그곳에 가려 합니다.
그 어느 피서지 보다, 더 근사한 마음의 고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 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싶습니다.
흔히들 맏며느리는 어깨가 무겁다 합니다.
하지만 전 그 무거운 어깨 마저 함께 기대어 갈 그분들을
사랑할 겁니다.
시어머니를 친정엄마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때론 친구처럼, 딸 처럼 늘 마음속 이야기 까지 다 하면서
그리 살고 싶어 집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걱정하기전에
저는 그렇게 저대로 살아가면 되지 쉽습니다.
비는 계속 내립니다.
마음은 어느새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