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거기 김 **씨 계세요?”
비디오 가게 주인이라고 밝힌 여자는 시누이에 대해 묻는다.
연락처를 묻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
가족이 아니냐고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묻는다.
“글쎄요. 가족이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그러네요.
혹 연락 오면 전해 드릴께요.”
비디오 톄입을 제 날짜에 반납 안 해서 우리 집까지 전화하게
만든 문제의 시누이는 이제 스물 네 살이다.
간간이 명절에 집에 들르거나, 잊혀질만 하면 이런식의 전화로
어디 에선가 살아가고 있음을 전해 온다.
남편에겐 남동생만 둘 있었다.
아들만 셋을 두었던 시아버지는 이십여년 전 어느 날, 딸이 너무
갖고 싶던 나머지 시어머니와 의논도 없이 고아원에서 세살 된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이 아이는 귀여움을 받으며 2년은 보냈지만, 얼마 안 있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혼자 남은 시어머니에게 남겨진 건 아들 셋과 시할머니,거기에
입양된 딸까지.
혼자 제 자식들 먹이기도 힘이 부친데,
어찌 입양된 딸이 이뻤겠는가?
더구나 ‘팔자에 없는 사람을 들여서 명을 재촉했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는 더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위기와 환경의 변화는 다섯 살 어린 아이에게도
불안하게 비쳤으리라.
언제부턴가 주위에서 없어지는 물건이 많아졌다.
결정적으로 옆집에서 돈이 꽤 들어 있던 지갑을 잃어 버렸는데,
그게 그 아이의 소지품에서 나온 것이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시어머니는 너무 겁이 난 나머지 _아마, 친자식이라면 어떻게든
버릇 을 고치려 했겠지만_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냈다.
혼인 신고를 위해 호적등본을 떼어 보니, 남편 밑에 여동생이
있었고, 2년을 집에서 보낸 입양의 흔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아원에서 나올 때, 우리는 인도 서류에
서명했다.
이제 법적으로는 성인이라 대신 책임져야할 이유는 없지만,
신상조회 를 하면 우리 집으로 연락 오게 되어 있는
가족인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모호함 때문에
도저히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만약 이 아이가 자신의 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었다면,
혹은 중간에 입양 되었다가 되돌려 보내지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자랐을까?
두 번 버림 받는 사이 아이는
‘자신의 삶조차 가벼이 버리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무슨 카드사에서도 전화가 오고, 건강 식품 판매 회사에서도 전화가
온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핸드폰 번호도 바꿔버리고, 직장도 바꿔버리고,
아주 가끔, 깊은 밤중에 술에 취한 듯, 혹은 울먹이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올 때도 있고,
시어머니에게 “엄마, 필요한 거 없어?”하며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이제 스물 넷이나 되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한 한없이 측은하기도 하다.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자신의 상처를 동시에
치유하기 를 바랄 뿐이다.
이 추운 겨울 날, 작고 여린 몸 어디서 부비고 있을까? 내 시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