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디서 날아 왔는지 무당벌레 몇 마리가 천장에 붙어서 기어다닌다. 지난해 이맘때도 대 여섯 마리의 무당벌레가 날아와 천장에서 기어다니다가 느닷없이 방바닥에 떨어지고 식탁으로 날아다니곤 했는데 또 다시 겨울이 다가오자 빨간 점박이 무늬를 가진 놈과 빨간 바탕에 검은 무늬 를 가진 녀석들이 떼지어 와서는 방안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풀이나 낙엽 밑에서 겨울잠을 자는 녀석들이 잠시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녀석들은 저희들끼리 몰려다니며 벽을 기어오르고 형광등 주변을 맴돌다가는 작은 날개를 펴서 날다가 방바닥으로 떨어져 구르는 것이 마치 아기가 재롱을 부리는 것 같다. 녀석들이 그럴 때마다 아내는 질색을 한다. 벌레를 유난히 싫어하는 아내는 벌레가 있다고 하여 잔디밭을 걷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다. 그러니 무당벌레가 천장에서 기어다니고 방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가만히 있을리 없다. 아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저 놈들을 빨리 잡으라며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나는 무당벌레를 잡을 마음이 없다. 무당벌레를 잡기는 커녕 그 놈들이 어디로 날아갈까 오히려 걱정이 된다. 빨간 점박이 무늬를 한 녀석들이 곰실 곰실 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거니와 그 놈들을 밖으로 내 보내면 얼어죽을 것 같아 창문조차 열어 놓지를 않는다. 질겁을 하는 아내에게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 이로운 곤충이며 우리가 벌레보다 나을 것이 무어냐고 겨우 설득하여 가까스로 밖으로 쫓아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벌레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벌레를 좋아했던 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바쁘게 책 보따리를 내팽개치고는 벌레를 잡으러 다녔다. 쇠똥구리,실잠자리,말매미,장수풍뎅이,하늘소,여치,송장메뚜기,사슴벌레를 비롯하여 사마귀,호박벌,거미,풀무치,개미귀신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쇠똥을 찾으러 다니곤 했다. 길가에 떨어진 쇠똥을 찾아서 나뭇가지로 파헤치면 그 속에 구멍을 뚫고 사는 쇠똥구리가 기어 나왔다. 그 중에서 뿔이 달린 수놈은 암놈보다 더 멋있었다. 쇠똥을 찾아서 나뭇가지로 파헤치고 다시 손가락을 구멍 속에 넣어 뿔이 난 수놈 쇠똥구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때의 감격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앞이마에 난 뿔이 흡사 코뿔소를 연상케 하는 쇠똥구리는 비록 쇠똥 속에 살고 있지만 갑옷을 입은 중세기사 같았다. 쇠똥이 덕지덕지 묻은 놈을 옷에 쓱 문지르고는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놈이 기어 나오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어 만지작거리다 보니 손에서 쇠똥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계룡산 기슭에 있는 내 고향 세동리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술독을 실은 말 달구지가 들어왔다. 달구지가 마을에 들어오는 날이면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구지 곁으로 모여들었다. 말 주인이 술독을 내려놓고 밥을 먹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달려들어 말총을 손으로 감아쥐고 뽑기 시작했다. 말이 소리를 지르고 밥을 먹던 주인이 쫓아오면 거머쥔 말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그렇게 얻은 말총은 매미를 잡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말총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긴 나무 끝에 매달아 매미를 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벌레를 잡으러 다니던 나는 어머니로부터 늘 꾸지람을 들었다. 어머니는 아무리 미물이라도 그 목숨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가서도 상수리나무에 숨어 있을 사슴벌레와 파다다닥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나는 풀무치의 화려한 날개가 눈 앞에 어른거려 도무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런 나에게 벽을 기어오르고 줄을 타고 하는 무당벌레의 재롱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며칠 전의 일이다. 그날 따라 일찍 집에 들어가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는데 무당벌레가 한 마리도 눈에 띄질 않는 것이었다. 벌레 곁에는 얼씬 못하는 아내가 그것을 내쫓을리 없고 창문이 닫혀 있으니 날아갈 리도 없는데 무당벌레가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아이들에게 물으니 초등학교 일 학년인 작은 녀석이 무당벌레를 잡아 필통에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지난 여름에도 작은 녀석은 어디선가 다리가 여럿 달린 흉측한 벌레들을 잔뜩 잡아 종이로 집을 만들어 방 한구석에 놓아두었던 일이 있었다. 나뭇가지로 땅을 파고 돌멩이를 들쳐서 잡은 것이다. 아이의 방을 정리하던 아내가 방바닥에 기어다니는 그것들을 보고 기절을 하다시피 놀랐던 일이 있는데 이제는 무당벌레를 필통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필통에 무당벌레를 넣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 속에 쇠똥구리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내 유년의 모습이 있다. 부전자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