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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되는 해에는 ...


BY 쟈스민 2002-12-12

또 한해를 그렇게 보내야 하나 보다.

12월 달력의 어느 하루에는 딸아이가 써둔 삐뚤빼뚤한 글씨 "가족만년회"가 보인다.

몇일 남지 않은 2002년 한해의 끝자락에 서 보니
지나온 한해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도 지난 가을부터였던 것 같다.

이유없이 괜스레 우울해 지고,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살아내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여
늘 어디론가 헤메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
겨울이 다 된 지금까지도 쉽게 그 우울의 흔적들을 지우기가 어렵다.

이렇게 날씨가 쌀쌀한 날이면
일찌기 저무는 해를 뒤로 하고 나는 늘 총총걸음으로 그렇게 퇴근을 서두른다.

엄마가 돌아올 때만 기다리며 몇번이나 시계바늘에 눈길이 머물렀을 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안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이 있었던 다음날에도
습관적인 동작으로 발길은 이미 집으로 향하고 있었던 적이 여러번 있다.

방방마다 따뜻하게 전등을 켜고는,
아이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가족들의 속을 훈훈히 덥혀줄 국을 끓인다.

식탁위에 나만의 색으로 또 한끼의 식사를 차려내는 일상으로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 한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지금 이자리가, 지금 이런 내 모습이
과연 최선을 다하여 얻은 것일까?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할지는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유난히 그 강도가 좀 지나쳐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지나친 욕심으로 채워진 이기적이기만 한 자신의 내면에 문제가 있다는
그런 말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은 오늘도 헬스클럽에 들러
결혼 10년간 함께 살면서 불려놓은 살과의 전쟁을 한바탕 치루고는
어제처럼 늦은 귀가를 하겠지 ...

나도 때로는 모든 걸 뒤로 한 채 오로지 내 자신만을 위하여
시간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아이들이 좀더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될듯 싶어
나는 늘 아이들의 엄마로 지내는 시간을 그 어떤 것 보다도 우선순위에 둔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키는 과연 얼마나 자랄 것인가
애써 즐거운 상상에 빠져 보기도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하여 나름대로 애를 써 본다.

그러면서 평범한 생활속에 녹아 있는 행복을 떠올린다.

그런데도 여전히
삼십대의 마지막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

헐벗고 가난한 영혼의 옷을 입히기 위하여
더 많이 인내하고,
더 많이 참아내야 하는
내게 지금은 그런 시절인지도 모른다.

삼십대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면서...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한해를 마무리 하고 프다.

그리하여 새롭고 희망찬 시간들로 가꾸어진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마흔 살 되는 해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