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하면 그 집에 따라 필요한 가구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처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 집과 한국 집은 크기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니 가구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미국에 오면 집이 크기 때문에 많은 가구가 필요하다.
남편은 가구 구입에 대한 결정권은 당연히 남자에게 있는 것으로 아는 문화에서 자란 사람이다.
결혼하고 처음 새로운 가구를 구입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내 의사 같은 것은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구입한 가구가 내 맘에 들 리 없다.
더구나 남편과 나는 극에서 극을 달릴 만큼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당연히 내 쪽에서 불만이 많았다.
부부라는 게 반쪽이 불만스러우면 다른 반쪽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남편도 자기가 선택했지만 내 잔소리가 불만이었다.
그 다음 가구를 선택하게 되었을 때 내 의견을 강하게 제시했고 취향이 다른 남편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 선택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남편이 참지 못하고 새로운 디너 테이블을 새로 사자고 하였고,
남편의 불만에 견디지 못한 나도 동의했다.
그래서 또 하나의 디너 테이블을 샀고 그 디너 테이블에서 손님 한 번 치뤄 보지 못하고 우리는 한국으로 이사를 갔다.
한 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었으니 남편도 나도 속이 쓰렸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아주 자리잡고 살기로 하였기 때문에 가구 구입에 신중을 기하자는 데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처의 거의 모든 가구점을 함께 돌아다녔다.
옷이나 가구나 남이 가진 것을 보면 그럴 듯 하고 좋아보이는데 막상 내가 사려고 하면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남편과 나처럼 취향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동시에 맘에 드는 것을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실감했다.
남편의 맘에 들면 내 맘에 안 들고 내 맘에 들면 남편 맘에 들지 않았다.
남편과 의견 일치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남편의 취향이 짜증스러웠다.
그런 취향을 가진 남편이 미워졌다.
그리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선택을 해 버렸다.
남편이 내게 최종적인 결정권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구가 배달되어 왔다.
그리고 그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최악의 선택이었다.
가구가 집 안에 놓여진 순간 ‘아차, 실수 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
가구를 바라보면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애써 실망스러운 마음을 숨기려고 했으나 숨길 수 없었다.
실망하는 나를 보고 결정은 내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안절부절 했다.
평소 난 말하곤 했었다.
난 가죽 쇼파가 싫다고, 천으로 된 것이 질감이 따뜻해서 좋다고…
바느질이 취미인 내가 천 갈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종류라면 금상첨화라고 했다.
어두운 색은 싫다고 했다.
밝고 명랑하든지, 따뜻한 느낌이 드는 색깔이 좋다고.
육중한 느낌을 주거나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것도 싫다고 했다.
집이 가구에 눌리는 것 같고 사람이 가구를 섬기는 것 같다고.
유리도 싫고 금속도 싫다고 했다.
나무처럼 따뜻한 느낌이 없다고.
내가 선택한 가구들은 내가 평소 싫다고 하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남편이 내가 어깃장 놓는 심정으로 선택했음을 환히 눈치 챌 만큼.
가구를 바라보며 나는 그만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아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남편은 가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가구 밑에 깔린 카펫을 걷어내어 보고, 테이블에 화분도 올려보고, 천 조각도 올려보고, 조금이라도 내 맘에 들게 하려고 애를 쓰는데…
하룻 밤을 자고, 가구에 대한 것은 깡그리 잊고 즐거운 기분으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러 나간 나는 거실에 버티고 있는 짙은 밤색의 육중한 가죽 쇼파 세트에 기가 질려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다시 힘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버릴 만큼…
죄 없는 남편은 또 다시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거실로 나갔다.
수술하고 나서 아직 근력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은 남편 혼자서 무엇을 옮기는 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힘에 벅찬 지 도와달라고 부르는데 난 허리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계속 누워 있었다.
가구를 다시 바라보기도 싫어서.
그래도 계속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지못해 나가보니 남편은 혼자서 chair를 지하실로 옮기고 있었다.
들지 못하니 거의 굴리다시피 하면서.
찢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하니 상관없단다.
마누라가 보기 싫은 것을 눈에 안 띄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새로 산 쇼파가 찢어지건 말건 그건 자기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서…
chair라도 없어지니 답답한 느낌이 한결 덜 하다.
그 보다는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내 답답함을 덜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도 남편이 내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안쓰러울 만큼 역력하다.
그래도 내 기분은 금방 달라지진 않는다.
낮잠을 자다 부엌에서 나는 물소리에 잠이 깨었다.
방문을 나서니 마루가 미끄럽다.
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남편이 전 주인이 쓰다 두고 간 나무 광택제로 마루를 닦은 것이다.
마루가 온통 번쩍번쩍하다.
미끄럽다고 투덜거리는 내게 남편은 얼른 실내화를 대령한다.
내 눈치를 보는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남편은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돌려보려고 마루를 닦아두고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난히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여자하고 사느라고 애쓰는 남편이 불쌍하기 조차 하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대로 봐 줄만 하다.
가구를 집에서 치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오히려 사랑스럽다.
그 어떤 가구보다 우리 집에 꼭 맞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날 배려하는 마음이 스며있는 듯 해서...
앞으로 가구를 바라 볼 때 남편이 날 배려하던 마음이 먼저 보였으면 좋겠다.
그럼 답답해지지 않고 사랑스럽게 보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가구가 답답했던 것은 남편 탓이 아니고 내 탓 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난 항상 내 탓을 남편 탓으로 돌리고 남편을 공격한다.
내 탓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