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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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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날들


BY ajkkk 2002-11-30


동네 약국에 붙여있는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포스터를 보았다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니  아주 구미가 당겼다 
모든  선전이 다 그렇겠지만 
일생일대의 전시라고 뭐 백 몇 십만 명이 다녀갔다고 하는 거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도 꼭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을 끈 건 
모든 전시품이 다 인체의 실제 모델이라는 거였다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아직 건너지 않은 죽음의 강을 
건너갔다는 것만으로도 외경심을 주었다 
감기 때문에 열이 나는 몸을 끌고 길을 나섰다    
굉장히 멀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가기 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기대를 하지 말라는 거였다  
전시품이 얼마 안되어 금새 끝난다고 했다    
전시품이 얼마 안 된다는 말을 명심하면서 찬찬히 관람을 하기 시작했다 

관람하는 데 자기 일행에게  설명을 해주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좀 작은 소리로 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말을 할 때 목소리를 조절할 줄 알아야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자기 아이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온 전시관에 다 들리니 우리 교장선생님께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제일 먼저 뼈가 있었다 
뼈 모형은 많이 보던 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다보니 신경을 낱낱이 꺼내 놓았고 
또 근육을 낱낱이 헤집어 놓았다 
사람이란 존재가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저런 뼈와 근육의 덩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잘난 체 할 것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구도  이렇게 생긴 존재구나 하는 생각에 
웬지 모르게 안도가 되었다 
우리 모두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은 왜 들었을까   

여러 동작을 할 때의 근육 모양을 보여 주는 것이 여럿 있었는데  
무심히 하는 한 동작 한 동작에도 수많은 
근육과 뼈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 있는 날들

자기 피부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엄청난 양이었다   
피부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며 상당히 질겨 보였다  
피부 없이 살 수 없다고 하니 피부를 가진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2층으로 올라가자 몸을 도는 혈관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뼈로 보았을 때는 뼈로 우리 몸이 이루어진 것 같았는데  
근육을 보았을 때는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혈관을 보니 온 몸이 혈관으로 덮여 있었다 
좀 더 나가  신경계통을 보니 또 신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대체 우리 몸은 얼마나 많은 기관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내장 기관을 보니 내장 기관은 예상보다 작았다 
임신 5개월의 아기를 가진 임산부가 있었다 
태아도  전시되어 있었다   
저 태아는 저렇게 뱃속에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전시되고 있다 
그 옆에는 각종 기형을 가진 태아들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감사했다  
2000명에 한 명꼴이라는 어떤 기형에도 안 걸리고 
5000 명에 한 명꼴이라는 또 다른 기형에 걸린 것도 아니다  
뇌가 없는 것도 아니고 탈장된 것도 아닌 것이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건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다 

세상일이 꼬이고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 같은 날 
한 번쯤 시선을 자기 몸 속으로 돌려보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기분 전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