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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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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이모와 늙은개와 도둑고양이


BY 새봄 2001-07-04

막내 이모는 늙은 개 한마리를 기르고 있다.
재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치와와.
늙어서 머리가 허옇고 이빨이 다 빠진 애완용 개.

서울 개봉동쯤에 터를 잡고 사는 이모네 집은 아파트 일층이다.
일층 화단엔 장미 넝쿨이 그늘을 만들고,꽃들이 늘어지게 피어있다.
초롱꽃,페츄니아,사랑초,금송화,접시꽃들이 옆을 다투어 피고지고 있다.
막내 이모는 깔끔하고 자연과 함께 즐겁게 사는 분이다.
씽크대와 커텐과 침대보가 흰색이고 쇼파도 연한 아이보리색이다.
베란다엔 사랑초와 바이올렛이 즐비하고,
애기때부터 키운 재롱이를 맨날 끌어 안고 외출을 하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고 특이한 건.
화단 장미그늘에 도둑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생선을 주고 보살펴 주어서 동네 고양이들이 그 곳에 터를 잡고 새끼까지 낳았다.
나도 꽃과 동물들을 좋아해 그것들을 보기위해 어제 이모네집엘 갔었다.
넓고 하얀 실내와 무성한 나무와 화사한 꽃밭이 있어 더워도 시원한 기분이 들어왔다.
고양이들을 보기 위해 앞베란다를 여러번 들락거렸고,
화단에 몇번씩 나가서 장미나무 그늘밑을 살폈다.

커다랗고 점잖은 아빠 고양이.
얼굴 반쪽씩 색이 다른 이쁜 엄마.
떠돌이 얼룩 고양이.
앙증맞고 깜찍한 새끼 고양이 네마리.
두마리는 아빠 닮았고 두마리는 엄마를 쏙 빼 닮았다.
재롱이의 남자 친구 두마리도 보았다.
재롱이는 늙어도 이쁘게 생겨서 남자 친구들이 맨날 맨날 놀러 온다고 한다.
동네 사내들이 현관문앞에서 나란히 그리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단다.

이모는 고양이를 보살펴 주지만 개중에는 아니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험오해서
회의와 회의를 거쳐 고양이 잡은 덫까지 놓았다고 한다.
그 덫 하나에 십만원이 넘었는데 두 개나 구입해서는 고양이가 잘 다니는 곳에 놓았지만
이모의 보살핌으로 덫에 걸린 고양이는 없었고,
미끼를 놓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동네 사람들이 결국엔 덫을 철수해 버렸다고 한다.
이모가 배가 터지도록 먹을 것을 주어서
배부르고 영리한 고양이들이 덫에 놓인 생선을 건드리지도 않았다는 뒷이야기.
이 통쾌한 사건을 듣고 방 바닥을 치며 뒤로 자빠지며 배꼽이 아프도록 웃고 또 웃었다.

쇼파가 뽀얗고 깨끗해서 앉아 있기가 신경 쓰였지만,
거실바닥에 머리카락 하나가 없어 빵을 먹을 때 흘리지 않을려고 노력했지만,
씽크대에 고추가루 한 개 붙어 있지 않아
김치국물 한 방울도 떨어 뜨리지 않으려 조심스러웠지만...
넓은 창에 하얀 레이스 커텐이 한지처럼 은은했고,
안방커텐과 침대보가 파란빛이 도는 흰색이라 눈부셨고,
가지각색 꽃들이 만발한 화단을 보며 두눈으로 느끼는 감성이 가슴까지 이어졌고,
도둑고양이들이 살아 남기 위한 눈빛과 투쟁일기가 감동스러웠고,
이가 다 빠저 합죽이가 된 늙은 개 한마리에게
여러명의 남자 친구들의 기다림에 세상살이가 재미있었다.

어릴적에 외갓집에서 이모 뒤만 졸졸 따라 다니며 컸던 나는
중년이 된 지금도 이모가 좋아 무슨일이 있어도 얼른 전화를 하고,
쪼로록 달려가 이모와 수다를 떨다 온다.

막내이모와 늙은 개와 도둑 고양이들이 아무탈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며...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