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냐?
가짜냐?
"왼손
라가 아니고 시잖아."
밥상을
차리며 딸아이 방으로 앙칼진 목소리가 날아간다.
"오른손
올려주고, 거기서 열 번 다시 연습."
"왜
피아노 소리가 안 나는데?"
방으로
달려가 보면 아이는 머리를 만지작만지작 팔을 긁고 있다.
가슴에서 무언가가 밀려 올라온다.
"그럴
거면 관둬라. 관둬."
피아노가
뭔지.
어느
날 문득 딸아이의 피아노 가방을 들추다가 그 동안 진도
나간 것을 체크해 보았다. 넉
달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책.
그런데
한 곡을 가지고 삼사일 씩 또는 일주일씩 치고 있는 것을
알고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는
게 병이랬나?
가만히
계산해 보니 이러다간 체르니 치는데도 삼 년은 걸리겠다.
너무도
쉬운 것을 가지고 계속 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연습도 하루에 일곱 번이 다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그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리 나가는 것이라니. 더욱 놀라웠다.
갑자기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 그 동안 무심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를 아이에게 쏟아 부었다. 그리고 강행군.
열흘이
지나자 치던 책이 끝이 났다.
웃으며 케이크로 책 떨이를 해주고 다시 다음 책으로 몰아쳤다.
하루
일곱 번 연습하던 아이를 스무 번씩 연습을 시키니 아이는
피아노 안 친다는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다시
학원을 보낼까 하고 여기저기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모두
기초과정에 삼사년씩 걸리게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시간이,
돈이 너무 아까워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자연 찬찬히 따라주지 않는 아이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저녁시간을
모두 뺏아 버리는 아이가 밉기도 하고, 이렇게 밖에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그때 그가 말했다.
"피아노
땜에 싸우는 소리 듣기 싫어서 아빤 이젠 늦게 들어와야
되겠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기분이었다.
"하기
싫으면 관둬. 대신 다른 아이들 피아노 잘 친다고 부러워하지도
말고, 나중에 피아노 안 가르쳐줬다고 원망은 하지 말아라."
"응,
오늘부터 연습 안 해도 되나?"
화가
폭발해서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는 갑자기 눈이
반짝거린다. 뒤는 어찌되든 오늘만 벗어나면 그만이라는
듯.
"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하며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잠깐
밖으로 나가서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데, 아이
방 쪽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누구 좋으라고 그러는
건데 하는 생각에 좀체 화가 식을 줄 모른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를 그렇게 닥달한 것도 다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선 친구 누구누구는 벌써 체르니 친다고
하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부터였다.
어릴
땐 뭐든지 빠르다는 소릴 듣고 컸는데 학교를 보내니 더
빠른 아이들이 많은 탓에 조급해지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정말
아이 때문인가?'
'내
체면 때문인가?'
생각할
수록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엉키기만 한다.
"엄마,
이제 열심히 할게요."
아이는
아빠와 약속을 했는지 한 풀 꺾여 있다.
안
한다고 떼를 썼으면 더 밀고 나갔을 텐데, 고분고분 나오니
또 측은한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무리일 수도 있는데
자기는
옆으로 걸으면서 말이나 거북이처럼 아이에겐 앞으로 걸으라고
하는 엄마 게 생각이 났다.
참 어리석지 그지 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었는데. 그러면서도
"학원을
가든지, 나중에 다시 시작하든지 네 맘대로 해."
라고
선뜻 내뱉지도 못한다. 말하면 앞 뒤 가리지 않을 아이의
모습이 선해서 시키는
게 가짜인가? 안 시키는 게 가짜인가?
오늘도
어느 게 가짜인지 헤매는 가짜 쥑이기는 계속 된다.
<여기는 윤빈이의 마음 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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