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무늬의 창호지 미닫이문을 드르륵 밀면
정중앙에 다리가 넷 달린 갈색의 보물이 있었다.
양방향으로 문을 쓰윽 젖히면
내가 좋아하던 만화도
울엄마가 시간을 맞춰서 기다리던 여로의 ㅡ 땍띠야~~ㅡ 란
바보 신랑도 언제나 그 속에 다 들어 있었다.
리모콘의 손끝으로만 달랑거리던 느긋함은 없었지만
허리를 구부려서 채널을 돌리면
떨꺽거리며 전해지던 그 손맛도 가히 나쁘진 않았었고
아버지의 뉴스나 시사면에 가려서
보고 싶던 만화를 볼수 없을때 느꼈던
하늘이 무너질것만 같았던 슬픔도 그 시절엔 엄청 났었는데...
아버지의 연구한 부분이 지방 방송국의 프로에 나왔을땐
그야말로 난리 그자체였다.
아이들의 동요의 한 구절처럼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절말 좋겠다란,,그 가사에 맞게
언니는 아버지의 화면속의 모습을 담으려고
집에서 연신 사진을 찍고
온 집안의 설레임으로 그 현상된 사진을 보고는
우린 다 넘어가기도 했었다..웃느라고..
그 사진에는 우리집의 텔레비젼만 커다랗게 나왔을 뿐
방송중인 아버지는 브라운관의 시꺼먼 부분에서 찾을 길 없고
사진관의 아저씨가 그랬다나
ㅡ아니,,왠 텔레비젼만 이케 많이 찍었냐??
햇수로 십여년이 흐르고 보니
가전제품이 하나둘씩 수명을 달리하고
결국 밤마다의 즐거움인 나의 텔레비젼이 그 끝을 보이고 말았네..
소리만 들리고 화면은 연신 지지직 거리는 ,,
아버진 아홉시 뉴스만 끝나면
주무시기 바쁘셨는데
특별한 프로라든지 드라마를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와 함께 숨죽이며 보다가
뒤척이시는 몸짓에 아쉽게 우리방으로 와서 누울라치면
연신 천장을 돌아다니던 그 다음 장면들 때문에
속이 타기도 하였던
그 때의 텔레비젼은 유일한 사치스런 문화 생활이었었다.
보지는 않더라도 틀어 놓고선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이나
연신 들락거리며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하는 아이는
꼭 한마디씩 한다.
ㅡ 가전 제품이 말야, 이렇게 쉽게 맛이 가는 것은 낭비 아냐??
이 시간
그 동안 팽겨쳐둔 책의 한 구절이라도 봐야겠다.
작별을 고한 텔레비젼의 덕분으로
얼굴 마주하고 시시콜콜한 말이라도 할 시간이 생긴걸 보니
그리 나쁜것만은 아닌가 보다.
그 옛날 안방에서 무게를 잡고 있던 그 보물이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와 함께 그리워 지는 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