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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BY Ria 2002-11-12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내장사 입구)
내장사는 절입구에서 양쪽으로 늘어선 단풍나무의 화려한 옷갈아입기에서 시작한다
이른 단풍구경으로 색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내장사 앞 호수)
평화로운 분위기의 호수죠
내장산에 단풍색이 들면 호수의 물빛은 잔잔한 바람결에
비단치마자락 처럼 나폴거리겠죠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내장사 전경)
한국 최고의 가을산, 내장산의 한 가운데 위치한 내장사는
일주문으로 시작해서 단풍나무, 갈색의 굴참나무, 붉은 단풍나무, 노란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화려한 단풍의 세계를 연출하는데 단풍이 들면 유화를 보는 것 같이 화려하다
내장사는 백제불교성지로 무왕 636년 영은 조사가 내장산 어귀인 부도전 일대에
건설한 50동의 큰 절이었다.
건축 당시 영은사로 불리었다.
안타깝게도 1951년 1월 12일 한국 전쟁으로 다시 불타버리고 말았다.
내장사에는 지방문화재인 조선동종이 있다.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용굴)
내장사에서 40분가량 올라가면 용굴이 나온다
'용굴'이라 불리는 이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주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손홍록, 안의
두선비는 참봉 오회길과 함께 전주 사고에 있던 조선태조의 영정과
왕조실록을 용굴암지로 옮겼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실록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한다
반면 춘추관, 충주, 성주의 사고본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용굴암지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의 의의는 더욱 크다.
만약 이때 다른 사고와 같이 불타버렸다면 오늘날의 조선왕조실록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깍아지른 듯한 경사지위로 우리의 옛선조들은 어떻게 그 무거운 실록을
옮겼는지 나라를 사랑하는 그분들의 용기가 너무나 위대해 보였다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기름바위)
기름바위는 옛날 금선폭포에 신선들이 목욕할 때 인간들이 보지 못하도록
바위에 기름을 칠했다고 하는 전설을 갖고 있다.
전설을 확인하려 열심히 살펴보았는데 그렇게
미끄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금선폭포를 가려면 꼭 이곳의 좁은 철제 계단을 지나야 한다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신선문)
기름바위에서 금선폭포에 못 미쳐 왼쪽에 있는 바위이다.
옛날 신선들이 신선봉을 내왕할 때 이 석문을 통해 왕래했다는
전설이 있다.
신선들이 하늘에 올랐다고 해서 등천문이라고도 한다
신선들이 목욕을 했었다는 금선폭포는 물이 없는 탓에
폭포라기에는 아이의 오줌줄기 같았다
주로 남쪽의 위치한 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들이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인데도 용케도 마르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는 강인함이 우리민족처럼 끈질기다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등잔대)
산.단풍.사람-내장산여행 (그림첨부)
(용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