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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을 받는 남성의 사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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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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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이야기.1


BY 손풍금 2002-11-03

*사는 것은 힘들어**


이사한지 이젠 일주일이 넘어서고 있었다.
착한 아이들은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가 살던 집 갔다고 좋아하니 다행이다.
다시일을 해야 하는데... 생활정보지를 들고 이곳 저곳 일자리를 찾아 보았다.
다음날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판매하는 일자리라고 하여 가보았는데 어제 하던 통화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마트에서 팔던 생필품은 동이나고 지금 팔 물건은 다른 장소에 가서팔 남자들 면도기라고 하였다.
오늘 나처럼 새로온 사람은 여대생 한명과 서른살 정도 되보이는 주부였다.
“그럼 어디에 가서 그 면도기 파는건데요.?”하자 그들이 지정해주는 장소에가서 팔면 된다고 했다.
한개팔면 이천원씩 수당이 떨어진다고 했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벌써 판매를 위해 봉고차안에 오르고 있었다.
젊은 새댁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교통비만 날아갔자나요. 왜 솔직히 말을 안해주고 그래요?”하고 화를 내며 나갔고 나는 어째야 하는지 망설이다 지리를 몰라 택시를 탔던 교통비 삼천원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여“여기까지 왔으니 해보지요. 다 사람이 하는일인데 무에 못할게 있겠어요.”하고 차에 올랐다.
내 눈치를 살피던 그 어린 여대생도 나를 따라 올라섰다.
대전서 천안까지 한시간 남짓 걸렸다.
“나는 할수있다. 뭐든지..나쁜짓 아니고는 무엇이든지 할수있다..”하고 수없이 최면을 걸었다.
그들이 나를 내려놓은곳은 4차선 도로 보도위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떨어내느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면도기를 빠른 손놀림으로 진열해주고 사라졌다.
보도위에 서있는데 그 길고 긴 수많은 차량 행렬이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현기증이 나면서 참으로 막막했고 아득했다.
“아.. 어쩌면 좋아.. 어떡하지..괜히 왔나봐.. 어떻게 해야 하지...이젠 어떻게 해야해..” 사무실에서 설명할 때 고개를 돌려 그 차량행렬을 바라보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며 면도기를 보여주라 했는데 세상에.. 생전 첨 보는 남자들의 눈을 어찌 쳐다봐야 하는지...아... 어떡하지.. 도대체가 떨리고 창피하고 민망하여 고개를 돌릴수가 없었다.
난 외로 몸을 돌려 차량행렬의 반대쪽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저 꿔다논 보릿자루 마냥 말이다.
그러고도 뒷통수가 뜨거워서 어찌 할줄도 모르고 괜히 왔다는 후회가 솟구치고 그렇게 두시간을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그렇게 길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더구나 첫 출근인지라 면접때 깔끔해뵈려 흰 민소매 티셔츠에 검정 스커트를 입고 출근을 했는데...아무런 차양막도 없이 사정없이 햇볕은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고 두시간을 서있는 동안 간간히 클락션을 울려대는 짖궂은 기사아저씨도 있었다.
다른 기사분은 “아주머니.. 앞을 봐야 물건을 사지요.” 저 아줌마 처음 인가 보네... 그럼 물건이 팔리겠어요.“하고 소리쳐도 나는 못들은척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다가 어떻게 할줄 모르는 답답함에 눈물이 고여오기 시작했다.
반대로 흐르는 차선에 서있는 여대생을 바라보았다.
그 여대생은 판매하는 방법을 일러준 대로 면도기를 들고 정차해있는 차량행렬을 향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공부에만 전념해야할 학생도 저렇게 학비를 벌면서 사회에 발을 내밀며 저어린 학생도 저렇게 팔고 있는데 몇십년을 더 살아온 나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런단 말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위로와 질책을 주었지만 그것도 판매할수 있는 해결방법이 되지는 않았다.
갑자기 멀리 보이는 슈퍼 간판이 번쩍 눈에 들어왔다.
달려가서 소주한병을 사고 그 자리에서 반병을 마셨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술의 힘을 빌어 용기를 구했다.
잠시후 술기운이 돌면서 용기가 생기고 나는 비로소 차량행렬을 똑바로 바라볼수 있었다.
연거푸 경적이 울리고 하나둘씩 면도기가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햇살은 쨍쨍거리며 내 몸위로 쏟아졌지만 이젠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면도기를 많이 팔았으면 하는 생각하나로 그 자리에서서 왔다 갔다 했다.
어스름 보도위에 해가 지고 있을때 그 자리에 내려주었던 직원이 왔다.
“해볼만 하세요?”하고 물어보는데 그냥 소주병을 들어 보이는 것을 답으로 하고 차에 올랐다.
그날 내게 떨어진 하루 일당은 사만 팔천원..택시비 삼천원 제하고 소주 구백원 제하면 사만 사천 백원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올때와는 달리 또다른 자신감으로 든든해졌다.
무슨일이든 해낼수 있다는 자신이 대견스럽고 했다면 마음 아픈일일까..하지만 사는 것은 힘들어..옆에 앉은 여대생에게 “오늘 힘들었지요. 참 학생 곱고 착하네...”하고 손을 잡아주었다.
집에 다가오니 살가운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엄마..어디야? 왜 안와? ”하는 아이들..
“응..엄마.. 다왔어..집 근처야.. 맛있는 포도 사갈께.. 기다리고 있어”전화를 끊고 동네 슈퍼에 들려 단물이 농익은 포도를 사서 옥탑방으로 오르는길..
사는 것이 이리 고단하고 고달프기는 해도 반드시 길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도시의 별빛이 이리 고운지 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