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의 <잘했어요>
그대 잘 산다고 소식 들었죠.
그때에 그 사람과 그토록 원망했던 그대 선택 잘했어요,
나 역시 좋아요. 그대 덕분에 나를 알았죠.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리는 나를 알게 해 주었고,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까 날 잊긴 힘들 거야.
그대의 잘못된 선택이길 비는 비겁한 난 알았죠.
떠올리지 마요. 그대의 사랑은 너무너무 난 사람이죠.
추억이라 하면서 가끔이라도 내 생각은 정말 안 되요.
이제 만들어가요. 그대들의 추억을
내 탓에 늦게 만났지만 나도 잘 살 거에요.
또 아파하기엔 내 가슴에게 너무 미안해요. 건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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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윤종신의 테이프를 사주었다. 처음엔 분위기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오래도록 넣어뒀는데 어느 날 문득 꺼내들은 노래가 가슴을 울렸다. 특히 빗소리가 고운 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간직하고 또 꺼내보며 아파하고 위안을 받으며 살아갈까? 왠지 추억이란 단어는 아픔 보단 그리움이랑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아픈 기억들마저 시간이 흐르면 아름답게 포장해버리는 사람들의 습관 때문이 아닐까?
떠올리지 마요. 그대의 사랑은 너무너무 난 사람이죠.
추억이라 하면서 가끔이라도 내 생각은 정말 안 되요.
그런데 그렇게 정당화하던 추억에 이 노래가 경종을 울렸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리는 그 사소한 위안들이 지금하고 있는 사랑을 방해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 어쩌면 옛 추억을 지워 버릴까봐 그 추억의 장소엔 다른 사람을 들이려 하지 않는 것 바로 그런 일이 얼마나 현재를 거부하는 모습인가
이제 만들어가요. 그대들의 추억을
내 탓에 늦게 만났지만 나도 잘 살 거에요.
또 아파하기엔 내 가슴에게 너무 미안해요. 건강해요.
그렇다. 내 탓에 그대들이 추억을 못 만든다면 나는 또 다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떠나려면 깨끗이 그 흔적마저 다 가져가는 것이 바로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별인 것이다.
또한 그건 바로 떠난 자의 가슴을 다시 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내 가슴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정말 가슴 저리도록 내게 다가왔다. 그가 아닌 나라고 해도 내가 날 울릴 권리가 과연 있을까? 그래서 내 몸을 내 마음을 병들게 할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는 것일까?
너무도
아까운 현재의 강이 우리 앞을 흐르고 있습니다. 추억으로 현재를 막고 있는 어리석음에
빠진 모든 분 들, 우리 모두 행복 합시다. 현재의 태양 아래로 나와서
아직 노래를 못 구했어요. 노래를 구하는대로 바꿔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