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가 들려옵니다.
솨~~하고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
헤어짐이 아쉬워서 서로를 보듬어 안으려합니다.
계절을 잊은 진달래가 파리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분홍빛 꽃잎은 화사함을 잃은 노쇠한 여인네의
짙은 화장처럼 서글프게만 보입니다.
잠시 잊어버리고 싶은 상황때문에
혼자서 산길을 걸어 갑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발갛게 익어갑니다.
쏟아지는 가을햇살에 푸른 옷 벗어던진
나무들이 수줍어서 빨개진 얼굴로
숨어 있습니다.
땅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위로 하나 둘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이른 봄 마른가지에 싹을 틔우게 해 주었던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소복소복
상처를 덮어주고 있습니다.
잎은 지고...
세월이 흐릅니다.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사랑도 흘러갑니다.
땅위에서 무엇인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나비가 날고 있습니다.
가을을 닮은 갈색나비입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스산하게 부는 바람속에서 사랑을 할 수 있을런지
걱정스럽습니다.
마른 아카시아잎에선 한약냄새가 납니다.
달콤한 꽃향기에 취했던 날들을
생각합니다.
손에 잡히는 것만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잡히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더운 가슴속엔 수많은 행복의 씨앗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소리없이 내리는 가을비에 마음마져
젖어옵니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