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파오, 1
중국 치파오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족이 북방생활에 맞게끔 만들어 입은 일종의 길이가 긴 통 원피스의 일종으로 말을 타기에 편리하고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실용적인 옷이었다.
서기 1644년 청나라 세조가 중국 전체를 통일하면서 북경을 수도로 정하고 청나라를 건국하였다. 청나라 정부는 국민을 하나로 다스리기 위한 정책 중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남녀노소가리지 않고 모두 만주족 옷을 입는 법을 강력히 집행하였다. 이때의 치파오는 폭이 넓고 허리선이 없이 바로 직선으로 내려와 복사뼈까지 닿는 긴 옷으로 가장자리 부분은 수를 정교하게 놓아서 입었다. (圖 1)
위에다 다시 조끼에 해당하는 것을 덮어 입기도 하였다. 만주족들은 한족을 “치파오”라 칭하며 불렀다.
치파오는 이후 한족들의 미적인 감각으로 다시 개량하면서 변천. 발전하여 내려오다가 마침내 1920년대에는 중국 남여의 일상복장으로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圖 2)
특히 여성의 치파오 변화가 가장 크다. 몸에 착 들어붙는 형태로 허리선을 강조, 칼라가 목 위로 올라오기 시작, 단추나 고리 등이 이전에 세로로 채우던 것이 가로、목선 옆으로、가슴 옆선 등으로 채워지는 등, 넓었던 소매 폭이 좁아지고, 긴 소매에서 짧은 소매나 소매가 없는 형태 등으로 변화 되어갔다. 천과 장식에도 변화가 왔다. 이전의 두꺼운 천에서 가볍고 얇은 천으로, 치파오의 장식에 있어서도 이전에는 자수, 액세서리 등이 많아 상당히 화려했으나 간단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치파오는 만주족들의 전통적인 개념이 아닌 한족들에 의해서 평민들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특히 여성들의 유행복장으로 변화되어왔다. (圖 3)
현대 치파오는 장식등이 간단명료하고 생동적이다. 사람마다 개성을 강조하고, 여성들의 몸매를 살리는 것을 특히 강조하여 허리선을 날씬하게 보이게끔 강조하고 옷의 선이 유연하다.
가슴 선에서부터 허리선、엉덩이선、목선、소매선、복사뼈 닿는 선 까지 모두 인체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살려 선이 부드럽고 세밀하고 조리 있게 바느질이 되어있다. 치파오는 동방미인의 작고 자태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몸매와 우아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복장으로 자리 잡고서 오늘날 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圖 4)
최송합니다만 여기에는 도표나 사진이 수록 될 수가 없어서 도표는 야호- 사진- lianhuacha 사진앨범에 담아 두었습니다.